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謙齋 鄭瓘錫의 學問과 思想에 대한 일고찰 - 艮齋의 學的 계승과 실천의 관점에서 -

원문정보

A Study on Gyeomjae Jeong Gwan Seok's Learning and Idea- In the Viewpoint of Academic Succession from Ganjae and Practice -

겸재 정관석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일고찰 -간재의 학적 계승과 실천의 관점에서-

張炳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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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Ganjae Jeon Woo (1841~1922) was one of the noted men who led Korean moral philosophy late in the 19th century. He was locally based on Honam to succeed the genuine root of Nakron 洛論 division of Giho Scholar's Sector and form the theory of Seongsasimje 性師心弟說 (the theory of Seongjonsimbi 性尊心卑說), and criticized Hwaseo Scholars' Sector, Nohsa Scholars' Sector and Hanju Scholars' Sector that valued the mind 心 in his period. He deeply recognized the theory of Euiri 義理論, theory of Hwai 華夷論 and theory of Chungyeok 忠逆論, and practiced such recognition. Among a number of his students, Gyeomjae Jeong Gwan Seok (1901-1982) was based on Changwon, Yeongnam to make his efforts on succession and practice of the learning and idea of his teacher's having friendship with many Confucian scholars there. Gyeomjae appreciated that the academic essence of Yulgok and Uam had inherited to Ganjae, and then devoted his life to getting the truth. Gyeomjae succeeded the theory of Simseong from Ganjae, so that he claimed ‘Simyeoriwiil 心與理爲一’ based theory of training through the study for ‘Gyeongiyakji(sim) 敬以約之(心)’, so that he said ‘All those who claim the mind is Ri 理 hold the side learning of Seok Seon and Yuk Wang’ to criticize them. In addition, he succeeded the theory of Hwai and Euiri from Ganjae, and made a pledge for Moral Justice under the spirit of ‘Susaseondo 守死善道’ following his teacher Ganjae in the year of Eulsa and Gyeongsul. From this point, we can be sure that he lived a true moralist's life devoting his life to succession, expansion and practice of his teacher Ganjae's learning and idea.

한국어

19세기 후반 도학을 이끌었던 핵심적 인물과 학파로는 화서학파, 노사하파, 한주학파를 들 수 있다. 이들 세 주류학파가 시대와 철학 사상계의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또 다르게 이들 주류 학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학파로는 艮齋 田愚(1841〜1922)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을 들 수 있다. 근래 간재의 제자인 石農 吳震泳(1868-1944), 蒼樹 鄭衡圭(1880〜1957), 敬石 任憲瓚(1876-1956) 등에 대한 연구가 전개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같은 간재의 제자로서 영남 창원을 주 근거지로 하여 간 재의 학문과 사상의 계승과 실천에 진력하였던 謙齋 鄭瓘錫(1901~1982)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겸재는 약관의 나이에 繼華島(界火島)에서 艮齋 田先生을 執贄하여 拜謁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겸재는 거기에서 栗谷과 尤菴 선생의 학문적 眞訣을 얻어 듣고, 우리 유학의 도맥이 바로 간재 선생에게 전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유학의 학문 탐구와 求道에 진력하였다. 그는 蒼樹와 교유하며 陰陽太極說을 비롯한 학문적 논변도 가졌으며, 石農과는 禮說과 心性論을 비롯한 유학의 교리 체계에 대해 서신왕래를 통해 열정적인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 외 당시 많은 유학자들과 교유관계를 맺고 있었다. 첫째, 겸재의 ‘敬以約之’의 공부를 통한 ‘心與理爲一’론은 한주 이진상의 ‘心卽理’론을 비판하는 가운데, 孟子의 ‘求放心’, 朱子의 ‘以敬存心’론, 退溪의 ‘心能主宰’론에 근간하고 있는 간재의 ‘敬字以檢束心氣’와 ‘自然心與理一’론을 계승하고 있다. 둘째, 겸재의 ‘心本性’과 ‘性師心弟’說은 天-太極-性을 우주 만물 생성 본체로서의 理로서 보는 정자-주자-栗谷-尤菴의 설에 근거하여, 당시 主心家들의 ‘心卽理’설을 불가의 석씨설과 陸王의 心說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특히 주자의 ‘心主乎性’설은 先師 艮翁의 ‘心本性, 小心奉性’설에 전해지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간재의 ‘心本性’설과 ‘性尊心卑(性師心弟)설은 先聖과 先賢의 본지를 발명하고 本天과 尊性의 眞訣을 밝힌 것으로, 후대 학자들이 釋禪과 陸王과 같은 異端의 해설에 빠지지 않게 한 공로가 지대한 것임을 선양하였다. 셋째, 겸재의 간재 華夷論의 계승과 실천에 있어서, 겸재는 梅山-全齋를 계승한 간재의 華夷論과 義理論을 계승하고 실천하였다. 겸재는 을사년 능약과 경술년 국치일에 華島에 은거하여 도학을 강의한 스승 간재를 따라 유학의 전승과 전파에 전념하였으며, 일제의 剃禍의 烈氣가 번성할 때도 감히 그를 침범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겸재의 義와 利․華와 夷의 분별정신, ‘捨生取義’와 ‘守死善道’의 의리 정신 등은 스승 간재의 義理論과 華夷論 및 忠逆論 즉 ‘乙巳年 賊約과 庚戌年 國恥日에 華島에 은거하여 杜門自靖하였고, 甲戌年 薙亂 사건에서도 의리를 고수하며 실천에 옮긴 것’과 같은 도학적 의리 정신을 계승하여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보듯, 겸재는 스승 간재의 학문과 사상의 계승과 전개 및 실천에 진력한 진정한 도학자의 삶을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 국문 초록 >
 Ⅰ. 서론
 Ⅱ. 겸재의 學的 履歷 및 時代 認識
  1) 가계 및 학적 이력
  2) 겸재의 시대 인식 및 처세관
 Ⅲ. 간재의 心性論과 華夷論의 계승과 실천 양상
  1) ‘敬以約之’의 心論 전개
  2) ‘心本性’說의 계승과 전개
  3) 華夷論의 계승과 실천
 Ⅳ. 결론
 < 참고문헌 >
 < Abstract >

저자정보

  • 張炳漢 장병한. 영산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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