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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시기 좌익에 의한 대전집단희생사건 : 기존 문헌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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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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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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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기 좌익에 의한 학살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널리 알려진 사건이 대전집단희생사건이다. 이 사건은 1950년 9월말 대전형무소 및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수감되어 있던 천여명의 우익인사들을 정치보위부를 비롯한 좌익들이 집단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기존 문헌들은 그 과정 및 규모에 대해 대체로 과장하고 있으므로 면밀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기존문헌들에는 희생자가약7000명에까지 이르고 학살의 기간도 23일부터 27일까지 며칠간 지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문헌 및 증언들을 면밀히 분석하면 희생자 수는 1500여명이며 학살기간도 25일에서 27일까지이다. 사건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이 점령하면서, 충남의 각 지역 우익인사들은 대전으로 끌려와 대전내무서, 충남 정치보위부에서 취조를 받고 인민교화소(대전형무소)에 수감된다. 이들은 9월 25~26일 형무소 내 밭고랑과 우물, 용두산 등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수감된 사람들은 주로 외국인, 종교인, 또는 중요 인물로서, 마찬가지로 9월25~26일 목동성당, 프란치스코 수도원, 용두산 등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대전경찰서에 수감된 사람들은 주로 미군, 국군, 경찰 포로들로서 9월 27일 새벽에 경찰서 마당에서 총살되었다. 총살은 정치보위부, 내무서, 인민군에 의해 행해졌으며 그 이유는 희생자들이 양민을 탄압·살해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9월 중순 전세가 인민군에게 불리해지면서 노동당이 각 지방당에 내린 ‘유엔군 상륙시 지주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라는 지시도 이유가 되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좌익에 의한 학살에 관한 기존 문헌의 문제
 Ⅲ. 한국전쟁 시기 대전의 상황
 Ⅳ. 수감 장소 및 수감자 처우
  1. 대전형무소
  2. 프란치스코 수도원
  3. 대전경찰서
 Ⅴ. 희생 규모
 Ⅵ. 학살 방법 및 희생의 이유
 Ⅶ. 맺음말
 참고문헌

저자정보

  • 이나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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