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본 논문은 도교-불교적 깨달음을 내포하는 한 인용문과 몇몇 불어단어구조들 그리고 양가적(兩價的 ambivalent)인 뜻을 지닌 몇몇 불어단어들에 대한 고찰들을 통해 앎의 주체와 그 대상 사이의 경계짓기(분열)와 허물기(융합)에 대한 데리다식 글쓰기의 한 시도이다. 예를 들어 일상적으로 ‘체험을 통해 알다’를 뜻하는 불어동사 ‘connaître’의 어휘구조를 통해 살펴본 문자적 의미는, 일찍이 뽈 끌로델과 쟝-뽈 사르트르도 언급했듯이, 앎의 주체와 대상이 ‘함께(con)-태어남(naissance)’을 의미하며, 이는 장자(莊子)가 <소요유(逍遙遊)> 편에서 이야기한 ‘꿈속의 나비 이야기’, 즉 장자 자신과 나비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세계로서 ‘너’와 ‘나’의 ‘경계 허물기’이다. 또한 ‘(우연한) 만남’을 뜻하는 불어어휘 ‘rencontre’를 문자적 의미로 보면 ‘다시(re)-그 안에(en) 함께 있을지(의사소통을 이룰 때) 혹은-등지고(contre) 헤어질 지(의사소통을 이루지 못할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서로 얼굴을 맞댐과 등을 짐’이라는 가능성 모두를 열어 놓는 ‘양가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데리다가 ‘차연(la Différance)’을 논할 때 즐겨 쓰는 ‘양가적 어휘’ 목록 속에 자리 매김할 수 있는 것으로, 앎의 주체와 대상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그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한 ‘앎’의 여정으로서의 ‘만남’이자 불어어휘 ‘con-naissance (함께-태어남: 앎)’ 혹은 ‘re-con-naissance [다시-함께-태어남(깨달음): 재인식, 알아봄]’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이다. 또 데리다가 《산종(散種) La Dissémination》여기 저기에서 언급한 ‘주름(le pli)’ 역시, 마치 ‘여백(la marge ou le blanc)’이 ‘표시(la marque)’로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눈, 백조, 처녀성, 종이 등) 동시에 ‘탈-표시(la dé-marque)’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사이, 빈곳, 간격취하기 등) 상대를 드러내주는 이중의 표시이듯, ‘요(凹)’와 ‘철(凸)’로 ‘함축(im-pli-cation: 안으로 주름지게 하기)’이 됨과 동시에 ‘설명(ex-pli-cation: 밖으로 주름을 펼치기)’이 되기도 하는 ‘안(intérieur)’과 ‘밖(extérieur)’의 경계로서의 이 ‘주름’은 ‘여백’과 동의어이다. 이 <표시제거하기(dé-marquer)>로서의 ‘주름’과 ‘여백’이 곧 태극 이미지에서는 음양(陰陽)이라는 양의(兩儀)에 자신의 경계와 여백을 내어준 일원(一圓)이므로, 태극은 단순한 음과 양의 합이 아니라 (≠+ 혹은 ≠+) 그 음과 양이 생기게 하는 원리인 일원(◯)까지 담아야 하므로 (=++◯ 혹은 =++◯), 인식학적으로는 이항적(태극)이지만 존재학적으로 삼항적(삼태극)임을 태극과 삼태극의 이미지들의 ‘경계 제거하기-표시하기’와 ‘여백 제거하기-표시하기’를 통해 살펴보았다.
목차
2. Une r(e)-en-contre et un -pli- en tant que Différance
3. Entre l’ontologie et l’épistémologie: une prise de la frontière sans frontière et sa déprise dans l’image de Taichi et de Tritaichi
4. Conclusion
참고 문헌
국문초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