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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애덕과 대한민국애국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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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 Ae-Duck & Korean matron’s Patriotic club

윤정란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22집 2009.06 pp.9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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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Hwang Ae-Duck made a big footstep as a protagonist of national movement on account of her background. She was grown up in Pyongyang where famous nationalists like An Chang-Ho, Cho
Man-shik worked together. And her personal encounter with Christian faith, modern education at Jungshin that is the first women’s high school, Ehwa Academic Institution, and special care of her parents who widely opened to state-of-art modern studies made her a national movement leader. On such a circumstances, she organized [Songjuk death-defying corps] by herself to take part in 2ㆍ8(8, Feb.)
Independence Declaration ceremony and 3ㆍ1 Movement(1, Mar.). And she actively spearheaded in Korea matron’s Patriotic club activity. For this career, she spent three years in Daegu detention house learning many life lessons.
She insisted that every women have to come out of illiteracy to make our nation independent. So strongly she stressed on enlightenment more than any other movements. Right after release from Daegu Detention house, she began to study and put it into practise with special reference
to women’s enlightenment. She was deeply absorbed in women education at Taehwa-kwan (where Independence statement was declared), Geunwoo-Hoe activity, and especially contributed in movement to enlighten women in agricultural area since coming back from oversea’s study in USA. She thought that education for agricultural women is the utmost task, because farmers were more than 80% of all population back then. On the other side, she made an effort in parallel to teach women’s consumption behavior. As a fruit, she established an organization like consumption trade union. On this springboard, she finally jumped into political activity. In early stage, she took the lead in anti-Japan movement. But in the midst of it, while
interviewing many women in Daegu detention house, she realized that women’s enlightenment is the most urgent burden to make our nation independent.

한국어

황애덕이 민족운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장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당시 대표적인 민족운동가 안창호, 조만식 등이 거주하면서 민족운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던 평양에서의 성장, 굳은 신념을 가지게 했던 기독교와의 만남, 평양 최초의 여학교인 정신학교와 이화학당에서의 근대교육,
새로운 근대학문에 개방적이었던 부모님 등이 황애덕을 민족운동가로서 성장 할 수 있게 한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성장한 그는 송죽결사대를 직접 조직하고, 동경 2ㆍ8독립선언식 참여, 3ㆍ1운동 참여, 그리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본부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황애덕은 이로 인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
결국 독립이 되려면 모든 일반 여성대중들도 문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어떤 운동보다도 계몽운동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구형무소에서 출소한 이후 학업을 계속하는 한편, 여성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20년대에는 태화관에서 여성교육운동, 근우회 활동, 그리고 미
국 유학을 다녀온 후에는 여성농촌계몽운동에 몰두하였다. 당시 농민이 전민족의 80퍼센트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농촌계몽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운동을 하는 한편, 여성소비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그래서 여성소비조합운동 결성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 해방 후에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정치운동에 나섰다. 황애덕은 초기에 독립을 위해 적극적인 항일운동에 나섰지만 대구형무소에서의 일반여성대중들과 만나면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여성계몽운동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운동의 방법을 바꾸었던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성장배경
 Ⅲ. 송죽결사대의 조직과 활동
 Ⅳ.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조직과 활동
  1) 조직과 활동
  2) 대구형무소에서의 수형생활과 여죄수에 대한 계몽 활동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윤정란 Yoon, Jeong-Ran.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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