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I dealt with the thought of Buhyu-Seonsu and his viewpoint of the religious tradition in this paper. Buhyu, a Buddhist priest, revived considerably Joseon-Seon with Cheongheo-Hyujeong, a Buddhist priest,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The important point of Buhyu's life is a companionship with Sojae-Nosusin and Samyeong-Yujeong. Their companionship was formed through the medium of Chinese poetry. Nosusin had filled successively the chief minister of Joseon Dynasty. And Samyeong had leaded the righteous priest army i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ir unreserved and close interchange showed a typical companionship with Seon masters and Confucianists. Buyhu succeeded to the thought of Buyong- Yeongkwan and composed the world of the truth through the Chinese poetry. He sought the harmony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And he insisted on the thought of salvation of his country and the mercy. He succeeded to Buyong's thought but didn't make his own viewpoint of religious tradition. Establishing the lineage by Buhyu and his follower, Gakseong, the disciples of Buhyu built up the identity as the lineage after Baekam-Seongchong. Competing with Seosan's line, Buhyu's line played a leading role for the world of Buddhism in the late of the Joseon Dynasty. Centering around Songkwang temple, they succeeded to the custom of Bojo. On the other hand, they emphasized the view of the religious tradition centering around Buhyu. They just insisted 'the view of religious tradition of Taego after Imjae' like Seosan line. But they clarified their view that they claimed the orthodoxy of Buhyu not Seosan.
한국어
본고는 조선 중기 청허 휴정과 더불어 조선선을 크게 중흥시킨 부휴 선수의 사상과 그의 법통관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부휴의 생애에서 중요한 점은 소재 노수신과 사명 유정 등과의 교유이다. 특히 이들의 만남은 한시(漢詩)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당시 영의정까지 지낸 노수신 및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지도했던 사명 유정과의 격의 없고 긴밀한 교류는 유학자와 선승(禪僧) 간의 교유의 모범적인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부휴의 사상은 부용 영관의 선사상을 계승하고, 한시를 통하여 도(道)의 세계를 노래하는가 하면, 유ㆍ불 간의 조화를 꾀하고, 임진왜란을 당하여 구국(救國)과 자비(慈悲)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부휴는 부용 영관의 선사상을 계승하였지만 그 스스로 법통관을 정립한 것은 아니다. 부휴와 그의 제자 각성에 의하여 계파 성립의 기반을 구축한 부휴의 문도들은 백암 성총 대에 이르게 되면 계파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부휴계는 서산계와 경쟁하면서 조선후기 불교계를 주도하게 된다. 이들은 송광사를 중심으로 보조의 유풍을 계승하게 되며, 다른 한 편 부휴를 중심으로 한 법통설을 강조하게 된다. 다만 법통설에 있어서는 서산계와 같이 ‘임제-태고 법통설’을 주장하고 있으며, 서산이 아닌 부휴를 정맥으로 주장하고 있음을 밝혔다.
목차
Ⅱ. 부휴 선수의 생애와 봉인사
1. 부휴 선수의 생애
2. 소재 노수신(蘇齋盧守愼) 및 송운 유정(松雲惟政)과의교유
3. 광해군 및 봉인사와의 인연
Ⅲ. 부휴 선수의 사상
1. 부용 영관의 선사상의 계승
2. 도(道)의 세계를 노래함
3. 유ㆍ불 조화(儒佛調和)
4. 구국(救國)ㆍ자비(慈悲)
Ⅳ. 부휴의 법통관과 부휴계의 활약
Ⅴ. 맺음말
◎ 국문 요약문
◎ 영문요약문
◎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