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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 민제인의 유물과 유적에 관한 연구

원문정보

關於立巖閔齊仁遺物和遺蹟之硏究

민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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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본 논문은 입암 민제인의 유물과 유적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입암은 현달한 가통의 명문거족으로서 용의가 빼어났으며, 천성이 온화하고 인후한 성품과 위엄 있는 외양을 조화롭게 겸비하였다. 그는 조선조 16세기 정치적 격변기에서 의정부 좌찬성 등 내외 주요 높은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몸소 수기 안인(修己 安人)을 실천한 도학의 유학자요 관료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선진성학(先秦聖學)의 대도(大道)에 근거하여 부모형제에 대한 사랑에서, 나아가 애민(愛民), 위민(爲民), 보민(保民)의 입장에서 국가 보위와 민심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도통(道統)으로는 정암 조광조의 순절(殉節)과 율곡 이이의 행도(行道)의 중간에서 이었으며, 경서와 역사에 밝았고 문장에도 능통하였다. 입암의 주요 유물과 유적으로는 입암집, 동몽선습, 동국사략, 백마강부 편액, 민 입암집 판각, 묘역의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입암 민제인의 시문집인 입암집은 천․지․인으로 분류된 6권 3책으로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은 1610년(광해군 2)에 발행되었으며, 판 사항은 목판본이고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일반사항으로 권1-2(1책)은 훈련도감 목활자이고, 1610년에 서(序)는 유근이, 지(識)는 손자인 민여임이 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81년 6월 서지학자 안춘근에 의해 발견된 동몽선습은 입암 민제인이 후학을 깨우쳐 인도하고 세상의 참된 교육을 유지하며, 독행(篤行)과 진학(進學)의 문로(門路)를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저술하였으며 최초로 목판 인쇄로 간행된 교과서이다. 윤인서가 쓴 발문에는 저자, 저술 동기, 책이름, 저술 년도, 발문을 쓴 사람까지 자세하게 밝히고 있어 입암의 동몽선습이 최고(最古)의 정본(正本)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1543년(중종 38)에 간행되었으며, 판 사항은 목판본이고, 형태사항은 1책으로 되어 있다. 입암 민제인의 저술로 동국사략 3권이 있었으며, 고란사 영종각 안 벽면에는 입암이 지은 백마강부(白馬江賦) 편액이 걸려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민 입암집 판각(閔 立巖集 板刻)’은 입암 민제인의 입암집 판각을 보장하고 있는 소실이다. 이 건물은 1995년 10월 7일 충남문화재(문화재 자료) 제341호로 지정되었다. 입암의 묘역은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명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묘소의 형태는 분묘이다. 묘소 앞의 상석과 제전 중앙에는 세월을 말해주는 모습으로 석등이 있고, 그리고 좌우측에 문인석과 망부석 등 석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묘소 바로 좌측에 그리 크지 않은 묘비가 세워져 있다. 입암의 신도비는 1668년(현종 9)에 세워졌으며, 매우 웅장하게 보인다. 이 신도비의 글은 입암의 이손인 노봉 민정중이 의뢰하여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썼으며 김수항은 전(篆)을 붙였다.

중국어

本文主要硏究了立巖閔齊仁的遺物和遺蹟. 立巖是16世紀朝鮮朝士禍時代的一位儒家學者和官僚知識人.出身於名門巨族的他性情溫和仁厚,而且外貌端莊, 擧止威嚴. 16世紀的朝鮮是一個政治上激烈動湯和變動時期, 身處這一時代的他曾歷任議政府左贊成等官職,可以說,立巖是一位親身實踐儒家修己安人之理想的知性人的表象.他的學行和道德人品當在殉節而死的靜庵趙光祖和栗谷李珥之間. 立巖從學問上來講, 對經書和歷史比較精通, 而且擅長寫文章. 立巖的主要遺物和遺蹟有 立巖集, 童蒙先習, 東國史略, 白馬江賦偏額, 墓域里的 遺蹟, 閔立巖集板刻等. 立巖的詩文集 立巖集按天․地․人來分類, 共有6卷3冊, 現收藏於奎章閣韓國學中央硏究院. 該書是木版刻本, 於1610年(光海君2年)發行, 現保存狀態良好. 卷1至卷2爲第1冊, 它是訓練都監木版活字, 1610年(光海君2年)由柳根寫序, 由其孫子閔汝任作識. 立巖集 是由立巖的孫子閔汝慶蒐集和編輯, 由立巖的兒子閔思安刊行的.後來,其孫子閔汝任在任慶尙道興海郡的首領時根據原來的文集重新編輯後刊行.1669年(顯宗10年)第5代孫認齋閔蓍重在任慶尙道觀察使的時候將尤庵宋時烈撰寫的神道碑銘刊附在卷末.到了1736年(英祖12年)第7代孫慶尙道觀察使梧軒閔應洙追加刊行了補遺,竝且讓人保存在大邱境內的龍淵寺極樂殿前的普光樓內.1926年第12代孫閔泳徽委託族叔閔達鎬追刻了追補. 童蒙先習由近人書誌學者安春根第一次發現,它是一本根據韓國人的實情最早刊行的傳授儒家思想的敎科書.尹仁恕在他寫的跋文里詳細地介紹了本書的作者, 著述動機, 書名, 著述年代, 寫跋文的人的姓名等, 立巖寫的這本 童蒙先習被後人評價爲歷史上最早的正本. 据考證這本書是木版本印刷, 於1543年(中宗38年)刊行. 立巖先生編纂童蒙先習的動機可由以下幾點來進行說明. 首先, 是爲了敎育後學修習儒家的人倫日用道德, 其此, 是爲了普及正確的敎育理念和敎育方式, 再次, 是爲了給百姓指明篤行和進學的門路. 童蒙先習由以下三部分構成, 作爲第一部分的總序里主要闡述了儒學的思想理論和道德, 第二部分是‘經’, 第三部分是‘史’, 主要是介簡約紹了中國歷史和韓國的歷史, 竝加了一些史論. 據李德懋所著的 靑莊館全書及金烋所著的海東文獻總錄的記載, 立巖生前著有 東國史略3卷, 但現在全部逸失而不傳於世. 忠淸南道扶餘郡的皐蘭寺靈鐘閣里面的墻壁上有一块立巖寫的白馬江賦偏額, 現在保存的這块偏額是由立巖的第12世孫岩亭閔泳臣後來重新製作的.白馬江賦主要表現了立巖站在白馬江邊有感於百濟亡國的歷史而抒發的愛民憂國之情. 立巖的墓所位於京畿道南楊洲市一牌洞, 墓所的形態是一座墳墓. 墓前有一座石床, 祭奠中央則有一盞象徵歲月的石燈, 左右兩側立着文人石和望夫石等石器. 墓所右側前方有一不大的墓碑. 立巖的神道碑高大雄壯, 被立於1668年(顯宗9年). 神道碑上的碑文由尤庵宋時烈受立巖之耳孫老峯閔鼎重的委託而撰寫, 竝由同春堂宋浚吉把它抄寫以後, 再由金壽恒用篆體刻於碑上. 忠淸南道扶餘郡的‘閔立巖集板刻’里收藏和保管 '立巖集'的板刻. 這座建筑物於1995年10月7日被指定爲忠南文化財(文化財資料)第341號. 藏版閣懸板上的字的作者是閔丙奭. 藏版閣里還陳列着板刻, 板刻的總數一共有135個, 而且前後面都刻有字. 另外, 墻壁上還挂着幾块懸板, 上面記錄着立巖集的板刻保存下來的歷史.

목차

한글요약문
 1. 머리말
 2. 생애와 인품
 3. 유물
  1)  『입암집』
  2) 『동몽선습』
  3) 『동국사략』
  4) 백마강부 편액
 4. 유적
  1) 민 입암집 판각
  2) 묘역의 주요 업적
 5. 맺는 말
 참고문헌
 中文抄錄
 부록

저자정보

  • 민황기 閔晃基. 청운대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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