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間島光明会と永新中学校– 韓日中の「理想郷」は可能だったろう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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間島光明會와 永新中學校– 韓日中의 理想郷은 가능했을까 –

간도광명회와 영신중학교– 한일중의 리상향은 가능했을까 –

許寿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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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간도사건 직후 日高丙子郎은 龍井에다가 ‘民族協和’를 내세워 光明會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어학교 등 조선인 학교를 경영하였다. 중국 정부의 많은 인사 그리고 적지 않은 조선인이 이에 참여하였다. 이와 같은 日高丙子郎과 광명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얼마간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평가는 상반되었다. 일본에서는 광명회의 교육 활동을 중심으로 그 근대성을 주목하였으며,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반면 중국에서는 日高丙子郎과 광명회의 활동을 ‘민족 동화’를 위한 ‘음모’로 보고, 그에 반대한 운동을 주목하였다. 한국에서의 평가도 중국과 유사하다.
본고는 선행 연구에 바탕으로 광명회의 교육 활동과 그 위상을 살펴보고, 일본의 간도침략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日高丙子郎은 침략주의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日高丙子郎는 일본의 만주 침략에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간도 이상향’의 구상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민족협화’의 이념은 믿음에 불과하였다. 물론 중국 관헌이나 조선인 일부가 광명회를 지지하긴 했지만, 이는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특수한 체제 속에서 나온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다양한 사정으로 인하여 광명회의 사업을 지지하였던 것이다. 광명회는 많은 조선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조선인의 동화와 제국 이념의 강요에 있었다. 광명회가 실시한 교육은 근대적 교육이라기보다 식민지 교육이었던 것이다.

목차

1. 光明会の設立と日中の対応
  1) 日高丙子郎と光明会
  2) 日本外務省と朝鮮総督府の光明会に対する補助とその背景
  3) 中国の光明会に対する態度
 2. 光明会の永新中学校接収と朝鮮人の反対運動
  1) 朝鮮人の光明会認識
  2) 永新学校の光明会への移譲経緯
  3) 朝鮮人の永新学校移管に対する反対運動
 3. 光明会経営学校の教育方針と教育内容
 4. 外務省の光明会整理計画
 국문초록

저자정보

  • 許寿童 허수동. 中国 汕頭大學 法學院 副敎授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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