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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祖와 駙馬의 시문수창 연구

원문정보

A Study on the Cantillation of King SunJo(宣祖) and royal sons-in-law

선조와 부마의 시문수창 연구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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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Royal Family enjoy and produce the highest level of cultures, so is very interested subject of investigation. This paper researched the Cantillation of King SunJo(宣祖) and royal sons-in-law. King SunJo(宣祖) made many poetries and proses his sons-in-law and let cantillate them. The poetries and proses of King SunJo(宣祖) celebrated happy events, consoled the night duty of his sons-in-law. YunSinji(尹新之) and ShinYigSeong(申翊聖), royal sons-in-law of King SunJo(宣祖) represented their thanks and for parental affections. While, the Cantillation of Royal Families reflected academic circles and literary circles of at that time. In the middle Chosun(朝鮮) dynasty, the level of Neo-Confucianism was upgraded by LeeWhang(李滉) and LeeYi(李珥). King SunJo(宣祖) also studied their acheivements, and persuaded his sons-in-law to study in his poetries and proses. While, King SunJo(宣祖) send Shiji(『史記』) and writings of HanYu(韓文) his sons-in-law, persuaded to study them. The literary circles at that time well acquainted with the Reactionism(復古主義) of Ming dynasty, So Shiji(『史記』) was emphasized in the view of "the prose should follow JinHan(秦漢)". But also the Reactionism(復古主義) of Ming dynasty was critical accepted in the middle Chosun(朝鮮) dynasty, so writings of HanYu(韓文) was revalued in the view of the beauty of writing form. King SunJo(宣祖) and royal sons-in-law cantillated in the palace, but reflected academic circles and literary circles in the middle Chosun(朝鮮) dynasty.

한국어

왕실은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를 향유, 생산하므로 문화사적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본고는 군왕 스스로가 문학창작의 주체가 된 경우로서, 宣祖와 여러 駙馬가 酬唱한 詩文을 살펴보았다.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문 수창은 일정한 문학 집단을 형성하여, 문학적 지향을 공유한다. 선조가 여러 부마와 수창한 시문은 개인적으로 장인과 사위의 시문 수창이면서, 왕실 가족간의 문학 활동 양상을 드러내며, 당시 학계나 문단과 일정한 관계도 보여준다. 선조와 부마의 시문 수창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첫째 선조가 자연인으로서의 사위를 위로하고 자신의 내면을 토로한 시편이다. 선조는 부마들의 가정에 일이 있거나 궁궐에 입직하는 경우에 종종 시문을 내렸으며, 이에 화답한 부마들은 그 은혜를 어버이와 자식과 같다고 하였다. 둘째 性理學 공부에 정진할 것을 독려한 시편이다. 선조는 스스로가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는데, 李滉과 李珥 등의 성리학적 업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선조가 성리학 공부를 독려한 시편을 부마들에게 내리며 갱화하도록 한 것은 성리학 공부를 통하여 심성을 수양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셋째 韓文과『史記』를 하사하며 내린 시편이다. 선조가 부마들에게 韓文과『史記』를 하사한 것 역시 당대 조선 문단의 흐름을 반영한다. 당시 조선 문단은 明의 復古理論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史記』학습에 적극적이었다. 한편, 조선문단은 복고주의 이론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韓文의 형식미를 재발견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의 부마들 또한 이러한 문단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는데, 선조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겠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선조와 부마의 수창 시문은 궁정 내부에서 이루어졌으나, 그 내용은 궁정 범위를 넘어서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선조가 직접 제작한 시편과 부마들의 화답시를 통해, 임금 스스로가 학계와 문단의 동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宣祖의 子女와 駙馬
 3. 宣祖와 駙馬의 시문 수창 양상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은정 Kim, Eun-jeong.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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