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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아시아 세계의 모든 투르크어 사용 유목민이 6세기 중반 돌궐(突厥) 제국의 부상과 함께 처음 출현한 투르크 정체성을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투르크계 유목 제국을 세운 돌궐인들은 ‘튀르크’(Türk)라는 명칭을 자칭으로만 사용했다. 돌궐의 뒤를 이어 몽골 고원을 지배한 위구르나 (예니세이) 키르기즈인은 튀르크인이라자칭하지 않았다. 그 결과 8세기 중반 돌궐 제국이 붕괴한 뒤 투르크 정체성은 몽골초원의 비돌궐 집단들 사이에서 존속되지 못했다. 투르크라는 정체성이 더 너른 의미를 얻은 곳은 이슬람 세계였다. 무슬림 저자들은 ‘투르크’[Turk, 복수형은 ‘아트라크’(Atrāk)]라는 용어를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모두를 포함한 내륙아시아 유목민을 지칭하는 데 사용함으로서 이개념을 널리 퍼뜨렸다. 마찬가지로 몽골인들이 이슬람 세계에 진출한 뒤에 무슬림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몽골인을 투르크인이라 불렀다. 일칸국의 몽골인들과 중앙아시아의 몽골 후계 국가(티무르조, 모굴 칸국, 시반조 우즈베크인) 모두 투르크인을 내륙아시아 유목민으로 정의한 무슬림적 시각을 받아들였고, 자신들을 투르크의 가장 명망높은 분파로 여겼다. (본고에서 중앙아시아는 서쪽으로는 카스피해부터 동쪽으로는 중국 신장까지 내륙지역을 가리킨다. 내륙아시아는 초원지대를 지칭한다) 본질적으로 이들의 투르크 관념은 비타지크(非Tajik), 내륙아시아 유목민 정체성이었지, 비몽골(非Mongol) 정체성 혹은 돌궐 제국과 연관된 정체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몽골 정체성을 포괄하는 관념이었다. 일칸국과 중앙아시아의 몽골 후계 국가들에서 작성된 사서와 문서류에서 언급되는 투르크, 즉 (유목민과 정주민의 통칭이었던) ‘투르크인과 타지크인’이라는 문구의 투르크와 칭기스조와 티무르조가 작성한 다양한 계보 속의 투르크는 일차적으로 몽골인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아시아적 투르크 정체성은 몽골 제국기와 포스트 몽골 시기 킵차크 초원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몽골 제국 이전 시기에도) 킵차크 초원에서는 ‘투르크’라는 용어가 킵차크와 같은 킵차크 초원의 비돌궐계 유목민 집단들의 자칭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당연히 킵차크 초원의 몽골 후예들(우즈베크, 카자크, 타타르) 또한 스스로를 투르크인이라 여기거나 부르지 않았다. 당대 중앙아시아의 몽골후예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몽골인의 후예를 자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