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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현대의 발해사 연구는 1770년대 학자들에 의해 영고탑(寧古塔) 지역의 옛 성터가 발해 상경용천부임을 고증함에 따라 개시되었다. 청말 동북지역은 러시아와 일본의 위협을 받았고 당시 관인・학자들은 이에 대응하여 변강방어를 목적으로 동북사를 연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해사도 함께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발해사 연구가 본격화되고 전문저서가 나타난 것은 청이 멸망한 후 그 유신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김육불이 『발해국지장편』을 탄생시킴으로써 1930년대 초에 발해사 연구는 절정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동북지역이 일본에게 함락된 후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부터 발해사 연구는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동북 지역・변강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동북 지역・변강연구는 학술적인 측면보다는 현실 정치적인 가치가 컸다고 할 수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후 고고활동을 필수로 하는 기본건설 방침 하에 동북지역의 발해왕릉에 대한 조사가 전개되었고 이에 따라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발해사 연구의 맥이 거의 끊어졌다. 1978년 개혁개방이 실시됨에 따라 동북지역 학자들은 발해사에 대한 연구를 재개하였다. 통일적 다민족국가이론에 근거하여 진행된 동북 지역・변강연구의 일환으로서의 발해사 연구는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소수민족정권・기미주부였다는 견해에 일치를 보이고 있다.



中国近现代的渤海史研究肇始于1770年代宁古塔古城遗址的考古发现。当时,《满洲源流考》将宁古塔古城遗址认定为渤海上京龙泉府。 晚清以降,为因应来自沙俄和日本帝国主义侵略的双重威胁,中国政界、学界出于边防安全的考量,就东北地区史展开了系统的研究。渤海史研究自然也在其列。 中华民国成立后, 前清遗臣或有出版渤海史专著。在这一学术思潮的影响下,金毓黻编纂了《渤海国志长编》,并于1934年将其正式出版。中国近现代的渤海史研究也随之达到了一个高峰。 “九・一八事变”后,东北沦陷。1937年,抗日战争全面爆发。东北地区、边疆研究成为中国学界反抗日本帝国主义侵略的学术回响,渤海史研究作为其中的重要组成部分而得以推进。此时的东北地区、边疆研究,相较于学术价值,其现实政治的意义更为突出。 1949年中华人民共和国成立后,在“考古工作必须以配合基本建设为主”的政策方针下,东北地区渤海王陵的相关考古调查取得了较大的学术成果。然而,由于“文革”的出现,方兴未艾的渤海史研究陷入了停滞期。 之后,随着中国改革开放的推进,中国东北学者重拾对渤海史研究的学术关切。他们基于“统一多民族国家”理论,展开了东北边疆、地区研究。目前,渤海是中国的一個地方少数民族政权、羁縻州府成为当代学者的学术共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