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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0세기에 들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문제적 고전으로 재평가되었다. 여기에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권상로(權相 老)이다. 권상로는 불교의 권위자로 『삼국유사』를 국역하였다. 그의 원고는 필사로 있다가 사후(死後)에 출판되었는데, 『삼국유사』가 불교 관계 기사를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국역은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이 점이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유고간행(遺稿刊行)이라는 사정 때문에 이 국역본의 간행에는 몇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역강’의 존재 여부와, 1977 년판의 윤문 문제 등이다. ‘삼국유사역강’이 1977년판으로 나왔다는 것이지만, 이 원고는 어떤 경위를 거쳐 완성되었는지, 권상로의 문장대로 가감 없이 출판되었는지 여전 미상(未詳)인 상태대로이다. 이런 문제점이발생한 것은 최초 이 원고가 유고(遺稿) 상태에서 출발한 데 기인하지만, 신뢰성 있는 텍스트가 되는 데에 보다 정교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후대의 책임도 크다. 나아가 권상로 국역본에 실린 ‘해제’이다. 권상로 자신이 쓴 것이 아니요최남선의 해제를 문장만 손질하여 놓았다. 곧 권상로 국역본의 해제는최남선 해제의 윤문인 셈이다. 누가 했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생전 권상로는 『삼국유사』를 극찬하였다. 『삼국유사』의 구석구석 자세히훑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길이 거쳐 간 『삼국유사』 국역본이다. 발간경위 등을 보다 정확히 밝혀, 이 국역본이 학문적 텍스트의 책무를 다하도록 해야 한다.



韓国の20世紀に入って、『三国遺事』は問題的古典に再評価された。こ こに関心を持った代表的な人物の中で一人が権相老だ。 権相老は仏教の権威者で、『三国遺事』を邦訳した。彼の原稿は筆写の ままで、死後に出版されたが、『三国遺事』が仏教関係記事をたくさん含ん でいるという点で、彼の邦訳は長所を持っているし、この点が研究者たちに 多くのお手助けになった。 ところで、遺稿刊行という事情のため、この国訳本の刊行にはいくつか 解けない疑問が残っている。<三国遺事訳講>の存在可否と、1977年版の 潤文問題などだ。<三国遺事訳講>が 1977年版で出たということだが、こ の原稿はどんな経緯を経って完成されたのか、権相老の文章どおり加減な しに出版されたのか、まだ未詳である状態だ。こんな問題点の発生したこと は、最初にこの原稿が遺稿状態で出発したのに起因するが、信頼性あるテ キストになることに、より精巧な努力を傾けない後代の責任も大きい。 ひいては権相老国訳本に載せられた<解題>だ。権相老自分が書いて ないで、崔南善の<解題>を文章だけ手入れして置いた。すなわち権相老 国訳本の<解題>は崔南善の<解題>の潤文であるわけだ。誰がしたのか 正確に明らかにしていない。 いつまでも権相老は、『三国遺事』をほめたてた。『三国遺事』のくまなく 詳らかに扱いていた。そんな彼の手長さ経て行った『三国遺事』 国訳本だ。 発刊経緯などをより正確に明らかにして、この国訳本が学問的テキストの 責務を果たす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