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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後秦)의 승조가 쓴 「물불천론」은 사물의 움직임[遷]과 움직이지 않음[不遷]을 논한 유명한 글이다. 또한 논쟁적인 글이기도 하다. 「물불천론」에 2번 사용된 성주(性住), 즉 ‘본성은 머문다.’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를 두고 쟁론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성주’에 대해 처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당나라의 징관(澄觀)이다. 그는 『화엄경수소연의초』에서 “승조 스님이 말한 의미를 살피건대 이미 사물의 각 본성은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소승에서 흘러나온 주장으로 이곳에서 다른 나머지 장소로 사물이 옮겨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명나라 말기의 사문 진징(鎭澄)은 징관의 이 말을 토대로 「물불천론」을 분석해 승조를 비판했다. 그러자 감산(憨山), 진계(眞界), 도형(道亨) 등 여러 사람들이 진징을 공박하는 등 이른바 ‘「물불천론」 논쟁’이 약 30년 동안 당시 불교계를 뒤흔들었다. 본고는 당나라의 징관, 오대(五代)의 연수(延壽), 명나라의 진징 등 세 사람이 ‘성주’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중심으로 「물불천론」의 내용을 조명했다. 징관은 ‘성주’를 ‘성공(性空)’으로 파악했고, 연수도 성주가 바로 성공이라고 지적했다. 징관과 연수는 “성주가 성공이므로 불천(不遷)”이라는 것이다. 반면 진징은 “주장은 있으나 논거가 없는 글이 「물불천론」”이라며 “성주는 성공이 아니고 오히려 상견(常見)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정반대로 해석했다.


A Study on the Wu Bu Qian Lun (Ⅰ)- Focusing on the concept of the ‘Dwelling in nature’ (性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