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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급격히 변동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는 신앙의 발로(發露)로 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한국기독교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해 종래의 연구는, 민족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공헌이라고 보는 관점, 혹은 기독교적 아이덴티티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는 관점 등이 있다. 이른바 ‘민족교회론’이나 ‘기독교 민족운동론’ 혹은 ‘기독교민족주의’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벨라(R. N. Bellah)의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면, 종교와 사회의 사이에서 나타나는 ‘창조적 긴장’은 현실사회의 존재양상이 종교의 신념체계 및 가치와 괴리가 있을 때 종종 나타난다. 한국기독교의 ‘창조적 긴장’은 한국기독교가 소속한 공동체의 궁극적 가치가 위협받을 때 또는 궁극적 가치가 변동할 때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기독교의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적 긴장’이 발현되는 상황 안에서는 교회의 결의에 의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공동체의 궁극적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해석을 전제로 할 때, 문용동 전도사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닥뜨린 그리스도인이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라는 신학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아가 그의 삶과 죽음은 그리스도인이 직면하는 역사의 변동 상황에서, 즉 사회의 궁극적 가치가 위협받거나 궁극적 가치가 변동될 때 그리스도인이 취할 수 있는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社会が急激に変動する状況の中でキリスト者の社會参与は信仰の発露として見なすことができるのか’という質問は韓国キリスト教の歴史研究にもっとも重要で根本的な質問である。これに関する従来の研究は、民族社会の一員としての貢献として見なす観点と、キリスト教のアイデンティティによる行為と見なす観点などである。それはいわゆる「民族教会論」、「キリスト教民族運動論」、そして「キリスト教民族主義」として具体化した。べらー(R. N. Bellah)によると、宗教と社会との間に現れる‘創造的緊張’は現実社会の存在様相が宗教の信念体系あるいは価値との乖離が生ずる時にしばしば現れる。そういうことで、韓国キリスト教において‘創造的緊張’は、韓国キリスト教が所属した共同体の究極的価値脅かされた時、または究極的価値が変動する時に現れたと言える。そして、韓国のキリスト者は‘創造的緊張’が現れる状況であるなら、教会の決意によらず自発的に立ち上がって共同体の究極的価値を守ろうと努力したと言える。 このような歴史解釈を前提とすれば、文龍童(ムン・ヨンドン)は5・18光州民主化運動という特殊な状況に出会ったキリスト者が‘このような状況でキリスト者はなにをすべきか?’という神学的質問に対する一つの選択肢を見せてくれるものである。さらには、彼の生と死はキリスト者が直面する歴史の変動の状況の中で、すなわち社会の究極的価値が脅かされる、あるいは究極的価値が変動する時のキリスト者が取り得る典型と言え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