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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論は、日本による朝鮮植民地支配とは何かを、朝鮮王朝の正宮であった景福宮の破壊という観点から検討しようとする試みの一端をまとめたものである。 本論の問題意識は、日本人に、現在は観光の名所でしかない景福宮は、実は日本の朝鮮植民地支配にとっては、朝鮮王朝に対する、韓国人に対する「心の支配」の中心地であり、象徴でもあったことを認識する材料を提供することである。「される側」から歴史をみる試みでもある。 景福宮を中心とした日韓関係史は、実に多様に展開された。「風水の都」漢陽の中で景福宮はどのように創建され、どんな王宮だったのか。約200年後の日本の侵略によって焼失した景福宮は、さらに約270年後の第26代国王高宗の時に再建される。そして、日本の本格的対外侵略戦争である日清戦争の時、最初に起こったのが景福宮占領事件であった。戦後、東アジアの覇権争いの中で、明成皇后殺害事件が起こり、高宗の露館播遷が行われた。そして、高宗は大韓帝国を宣言するが、この時期に日本による景福宮破壊が始まった。 1910年の韓国強制併合以後、景福宮は総督府の管理下に入り、王宮としての権威が破壊されていく。1915年に開催された始政五年朝鮮物産共進会は、景福宮の前面の破壊であった。直後から朝鮮総督府庁舎が建設され、勤政殿など中心の建物が陰の建物になる。さらに、1929年の朝鮮博覧会によって、景福宮の後側から後苑までが破壊される。これらの行為によって、景福宮はその姿を大きく変貌させる。その後、1945年の光復によって景福宮は日本の支配から解放される。 これまで列挙した景福宮の歴史は、日韓関係史に関わるものだけである。ここでは全体の「景福宮の歴史」は検討対象にしていない。 本論では、このような多くの関係史の中で、明成皇后殺害事件を取り上げた。その理由は、全てを取り上げると、与えられた頁数を超えるからである。 明成皇后殺害事件は、景福宮に関する研究が少ない日本では、優れた研究成果のあるテーマで、資料も比較的見やすい課題である。本論では、金文子の『朝鮮王妃殺害事件と日本人』(高文研、2009)という優れた研究を踏まえて、金文子の検討していない、事件現場である景福宮の乾清宮について検討した。なぜ、高宗は乾清宮にいたのか、日本軍はなぜ、乾清宮に行けたのか、アメリカ人とロシアン人に事件を見られてしまうが、彼らはなぜ乾清宮の近くにいたのか、など、明成皇后殺害事件をより深く理解するための素材を提供した。事件の起こった場所を検討することの意味を検討した。



본고는 일본에 의한 조선식민지지배란 무엇인가를, 조선왕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의 파괴라고 하는 관점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시도의 일단을 정리한 것이다. 본고의 문제의식은 현재 일본인에게 관광명소일 뿐인 경복궁이, 사실은 일본의 조선식민지지배에 있어서 조선왕조에 대한,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마음의 지배」의 중심지였으며 상징이였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는 하는 것이다. 또한 식민지지배의 역사를 「당한 측」에서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한일관계사는 실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풍수의 도시」 한양 속에서 경복궁은 어떻게 창건되었고 어떤 왕궁이었는가. 창건으로부터 약 200년 후 일본의 침략에 의해 소실된 경복궁은, 그로부터 약 270년 후인 제26대 국왕 고종시기에 재건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본격적 대외침략전쟁이었던 청일전쟁에 앞서 일어났던 것이 경복궁 점령사건이었다. 청일전쟁 후 동아시아의 패권경쟁 속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고종의 아관파천이 일어났다. 그리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언하는데, 이 시기에 일본에 의한 경복궁 파괴가 시작되었다. 1910년 한국강제병합 이후, 경복궁은 총독부 관리 하에 놓이게 되면서 왕궁으로서의 권위가 파괴되어 갔다. 1915년에 개최된 시정5년조선물산공진회는 경복궁 전방의 파괴였다. 직후부터 조선총독부 청사가 건설되면서 근정전 등의 중심 건물이 뒤로 물러나게 된다. 또한 1929년 조선박람회에 의해 경복궁의 후방에서 후원까지 파괴된다. 이러한 행위에 의해 경복궁은 그 모습이 크게 변모되었다. 그 후 1945년 광복에 의해 경복궁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다. 지금까지 열거한 경복궁의 역사는 한일관계사에 관련된 것 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체의 「경복궁의 역사」는 검토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이렇게 많은 경복궁의 한일관계사 속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다루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을 거론하면 주어진 페이지 수를 넘기기 때문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경복궁에 관한 연구가 적은 일본에서도 우수한 연구성과가 있는 주제로, 자료도 비교적 구하기 쉬운 연구과제이다. 본고에서는 김문자의 『朝鮮王妃殺害と日本人』(高文研, 2009) 이라고 하는 탁월한 연구를 바탕으로, 김문자가 검토하지 않은 사건현장으로서 경복궁의 건청궁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왜 고종은 건청궁에 있었는가, 일본군은 왜 건청궁까지 갈 수 있었는가, 미국인과 러시아인이 이 사건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들은 왜 건청궁 가까이에 있었던 것인가 등,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소재를 제공하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검토하는 것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