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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포의 영국인 로빈슨은 항해 이전에 종교에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의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서 고독한 삶을 살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의 삶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의 무인도의 외로운 삶은 개인적 차원에서 신앙 발견의 계기가 되며 프라이데이의 복음화는 식민지의 기독교화를 상징한다. 한편 샤무아조의 흑인 로빈슨은 무인도에서 초기에 유럽의 가치에 동화된 삶을 살지만 성경이 아니라 고대그리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인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들을 읽고 암송하며 의미를 파악하려 지적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이들의 글들은 그 난해성과 불투명성으로 인해 이해를 위한 흑인 화자의 이성적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며 그에게 좌절감을 안긴다. 하지만 그는 계속 이들 텍스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독서를 계속하며 이를 일과 중 하나로 삼는다. 그는 비록 이들 철학자들의 수수께끼 같은 텍스트에서 의미를 분석하지는 못하지만 이 텍스트들을 일상의 동반자로 삼아서 갖고 다니고 독서하며 친숙함을 느낀다. 그는 이들 텍스트를 합리적 방식이 아닌 직관적 또는 몸으로 느끼며 살아내며 점차적으로 이들과 거리감을 좁혀나간다. 그는 이들의 책자를 이해하여 자신의 정신에 흡수하려고 하였지만 이 자기화는 불가능하며 단지 그는 이 텍스트들이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남아 있으며 다른 주변의 여러 존재들과 관계를 형성함을 파악한다. 그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부분적이나마 텍스트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시에 나오는 진리를 추구하는 자에 대하여 동일감을 갖기도 한다. 샤무아조의 로빈슨이 보내는 섬 생활은 단지 생존이나 강요된 삶에 해당하지 않으며 그는 섬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 세상의 진리를 추구하는 자이다. 그의 진리의 길에서 이 두 철학자의 단편들은 비록 합리적 지성으로 이해하기는 힘이 들지만 하나의 지표가 된다. 그런데 그에게 이 단편들은 생각하는 주체인 로빈슨에 대한 대상으로서의 단편들이 아니다. 흑인 로빈슨에게 이 단편들은 일종의 인격체로서 존재의 위상을 부여받는다. 이들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그에게 나타나며 그의 내면에 들어온 이 존재들은 호흡하며 살아있다. 흥미롭게도 합리적 이성에게 문을 열지 않는 이들 단편들의 난해성과 불투명성은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여진다. 우리는 여기에서 샤무아조의 로빈슨이 고대그리스 두 사상가의 텍스트는 이타성의 다른 이름이며 이 로빈슨이 이들 텍스트와 경험하는 과정은 그가 타자의 이타성을 대하는 과정을 드러낸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샤무아조가 서구의 텍스트를 전유하는 방식을 볼 수 있다. 샤무아조는 서구의 합리적 주체가 명증한 내용으로 환원된 대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지배와 소유의 폭력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그는 주체와 대상의 구분을 극복하고 대상을 인격화하고 수평적 관계 차원에 위치시키며 관계맺음을 통해 타자의 이타성을 수용한다.


Robinson Crusoé dans le roman de Daniel Defoe Robinson Crusoé découvre la croyance en Dieu dans son île déserte et interprète sa vie solitaire selon la parole de Dieu. Pour ce converti, la lecture assidue de la Bible est son aliment quotidien. Il va jusqu’à évangéliser son esclave Friday. Par contre, abandonné dans une île par son capitaine auquel il a emprunté son nom Robinson Crusoé, Robinson chamoisien ne lit pas la Bible, mais de fragments de deux philosophes de l‘antiquité grecque : Parménide et Héraclite. Il garde sur lui “le petit livre” comprenant des fragments de ces deux penseurs présocratiques, réputés pour leur hermétisme, et le lit de façon constante. La pensée de ces deux philosophes ne lui permet, pourtant, pas facilement d’avoir accès à son essence en raison de l’obscurité linguistique et référentielle de son texte. Chaque fois qu’il essaie de déchiffrer rationnellement leurs fragments opaques, il se trouve toujours frustré en face de l’imperméabilité à la signification textuelle de ceux-ci. Son sujet pensant n’opère pas sa pénétration au sein de son objet textuel en vue de l’analyser et de l’approprier. Mais, malgré leur étrangeté, ils accompagnent la vie de Robinson dans l’espace isolé du reste du monde. Au fur et à mesure que sa vie dans le voisinage de ces fragments se prolonge, il se voit pénétré d’eux en voie de métamorphose en êtres vivants. Il s’aperçoit enfin qu’il est en présene de ces êtres en lui-même, qui est à son tour ouvert et en relation avec le monde des autres. La vie de Robinson chamoisien, dans son île carcérale, mais en compagnie des fragments obscurs et opaques de Parménide et d’Héraclite rend possible sa vie en présence des autres accueilla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