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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부산 盃山城址(2호 집수지)에서 출토된 목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배산성지 출토 목간은 문서목간으로서, 6·7세기 당시 신라의 지방행정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그 실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곧 지방 官府가 관할하의 村으로부터 물품을 受納할 때의 행정적인 처리가, 매우 꼼꼼하게 진행되었음을 알려준다. 본고는 이런 배산성지 출토 목간의 내용 중에서 특히 ‘失受’의 의미와 歲次(年干支)를 밝히는데 초점을 두었다. ‘失受’의 의미와 歲次(年干支)가 제대로 파악되어야만 배산성지 출토 목간의 실체와 작성연대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검토한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배산성지 출토 목간의 묵서는 몇 글자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墨痕과 筆劃의 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묵서의 적외선 사진과 출토 사진, 그리고 기존 연구성과를 참고하여 새롭게 판독하였다. 그리하여 ‘本’과 ‘舍’, ‘未’ 등의 몇 글자를 새롭게 판독하고, 그 근거를 나름대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판독내용을 토대로 하여, 목간에 등장하는 村名이 本阪舍村임을 규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歲次(年干支)도 기왕의 연구에서 제시한 乙亥年(또는 乙卯年)이 아니라 乙未年임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따라서 목간의 작성연대는 乙未年 직후의 어느 시기로 판단된다. 이 乙未年은 2호 집수지 내부에서 확인된 유물이 6세기 중반~7세기 초로 편년됨을 참고할 때, 575년 또는 635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배산성지 출토 목간에서 村名(本阪舍村)의 바로 밑에 이어서 기재한 ‘失受’는, 목간의 실체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그 의미가 주목되는 용어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 ‘失受’를 「佐波理加盤文書(뒷면)」의 ‘失受‘와 관련지어 ’잘못 받은 것‘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失受’를 ‘잘못 받은 것’으로 해석할 경우, 그 의미가 모호해진다. 곧 무엇을 어떻게 하면 ‘잘못 받은 것’에 해당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잘못 받은 것’의 의미가 지방 官府에서 ‘실제 받을 물품의 수량보다 많이 받은 것’인지, 아니면 ‘받지 말아야 될 물품을 잘못 받은 것’을 말하는지 애매하다. 뿐만 아니라 물품의 수납 날짜까지 자세하게 기록하는 지방 官府(居漆山郡)가 과연 관할하의 村으로부터 ‘잘못 받은 것’이 1~2건도 아닌 무려 4건이나 되었을지도 의문이다. 설령 특정한 물품을 지방 官府가 관할하의 村으로부터 잘못 받았다고 하더라도, 해당 물품을 바로 돌려주면 끝나는 일인데, 이 사실을 굳이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겨서 보관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장담할 수가 없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 ‘失受’를 기왕의 연구처럼 ‘잘못 받은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失(期)한 受(納)’ 또는 ‘受(納)을 失(期)한’으로 판단하였다. 이를 좀 더 쉽게 풀이하면 ‘受納 기일을 넘긴(놓친) 것’이 된다. 셋째, 배산성지 출토 목간은 本阪舍村에서 지방 官府(居漆山郡)에 물품을 납부할 때, 약속한 날짜를 넘긴 사실(‘失受’)만을 집중적으로 기록한 帳簿임을 확인하였다. 배산성지 출토 목간이 이와 같은 ‘失受帳簿’인 까닭에, 本阪舍村이 물품의 납부기일을 넘긴 사실(모두 4건의 ‘失受’)을 목간의 제일 첫머리에 전제하고, 그 구체적인 날짜와 물품수량을 하나하나 기록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 장부는 어디까지나 해당 村과 지방관청 사이에 진행된 특정한 사항(‘失受’)만 기록한 기초자료(‘失受帳簿’)일 따름이다. 당시에 이러한 종류의 기초장부―각 사항별로 기록한 장부―가 여럿 있었으며, 이 기초장부를 두루 모아서 작성한 종합장부가 별도로 존재하였다고 판단된다. 또한 배산성지 목간은 특정한 물품을 빌려준 사실도 기록하였는데(음력 2월 1일), 이 사실은 당시 지방 官府에서 관할하의 村을 대상으로 하여 곡식이 귀할 시기에 곡물을 대여하였음을 말해준다. 다만 촌락 단위로 빌린 물품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였는지, 村의 구성원 가운데 특정한 인물이 자신이 거주하는 村을 통해서 빌린 것인지, 물품(곡물)의 종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물품을 빌리고 나서 갚는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갚을 때의 이자는 얼마나 되는지 등은 목간에 나타난 기록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wooden tablet newly excavated from Baesan Mountain Fortress(盃山城址) in Busan. It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ly, the wooden tablet from Baesan Mountain Fortress is sort of official document consisting of approximately 50 letters in three lines. It is thought to be recorded at a specific point immediately after the year of 575 or 635 (乙未年, Eulminyeon). Secondly, the wooden tablet is a document focused on the fact that the village, Bonpansachon(本阪舍村) missed the deadline while making payments to the local authority. First of all, the wooden tablet revealed that there were four facts that the village missed the deadline, and then recorded the specific date and quantity of goods. This document is only the basic data that recorded the particular facts that have been made between the village and the local authority. It is considered that there would have been a separate comprehensive document collected by this kind of basic data at that time. Thirdly, the wooden tablet also recorded the fact that certain items were borrowed, which means that the local authority lent goods to villagers when the grain was precious (around February of the lunar calend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