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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는 대리국을 정복한 이후, 금치 등 제만 지역을 거쳐 면국과의 전쟁을 여러 차례 단행하였으며 또한 철리를 거점으로 하여 접경되어 있는 팔백식부국을 원정하였다. 원나라의 정면전이 실제 성과는 크지 않다 할지라도 이 승세를 타고 팔백식부국의 원정을 단행하게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면국의 버간 왕조가 여러 소국으로 분열됨으로서 대륙부 동남아에서 팔백식부국이 성장하는 계기가 된 점에 역사적 의미를 둘 수 있다. 앞의 원나라 대신들의 논의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땅을 얻는다 할지라도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나라의 대륙부 동남아 원정은 면국이나 기타 주변국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면국의 경우, 정면전으로 進貢이 이루어졌으나, 그 후에 면국에서 일어난 샨족의 반란에 대한 응징은 어처구니 없게도 원나라 장령이 샨족의 뇌물을 받아 실패하였다. 철리지역이나 팔백식부국의 경우도 원나라 장령의 뇌물 수수가 전쟁이 실패하는데 어느 정도는 작용하였다. 대칸이 정복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하더라도 장령들의 이러한 해이해진 기강은 중대한 일을 그르치게 만들었으며, 기후와 지형 등의 불리한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운남지역의 관원이나 군인을 최대한 활용하였으나 전쟁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쿠빌라이나 테무르의 대륙부 동남아 원정을 소극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전쟁후에 초유정책으로 교류가 이루어지게 되고 원나라는 금치 등 제만 지역과 철리지역을 운남의 강역으로 확대함으로서 운남 변방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완충지대가 형성됨으로서 팔백식부국과 면국의 연합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을 하는 과정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확대된 영역에 대해선 토관을 임용하여 통치하였는데 초유하거나 귀부해 오는 토착인, 주변지역(금치 제만지역이나 철리 등)에서 투항을 권유하여 초유하였던 토착인을 토관에 임용하였다. 팔백식부국의 경우도 금치 제만 지역과 마찬가지로, 원대 운남지역으로 이주하여 토관에 임용된 漢人의 사례를 통해 土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이들은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여름엔 근무하지 않고 겨울에 임직지에 나가는 유동적인 형태를 띠었다. 원나라의 정복전과 관련된 운남 서남변경에 위치한 주요 지역이나 국가는 “금치”, “白(百)夷” 등으로 명명되다가, 명나라 때의 사료에 百夷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 타이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국가는 원나라 이전엔 중국과 그다지 교류하지 않고 대리국과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원나라의 정복전으로 일부 지역은 중국의 통치체제로 편입되었다가 분리되어 나름대로 독자적인 발전을 하다가 명나라 초에 다시 명나라 초에 중국의 통치체제로 편입되었다.


The actual output of the conquest of Mian by the Yuan Dynasty was anything but significant, the fact the victory here led to the expedition of Lan Na is worth. The fall of the Pagan Empire also aided the growth of the new Kingdom of Babaishifuguo in continental Southeast Asia. As the discussions of the Yuan ministers show, great effort was put into these expeditions not because they aided the country, but rather because it helped stabilize the border regions. The conquest of the Kingdom of Babaishifuguo and how initially Mongolian or Semu government officials of the Yunnan administration (xingsheng) were active in the region reflects the importance of the Yunnan province. During the war th Yuan Dynasty appointed Tuguan to govern the territory consisting of local people and emigrants. The tribes and kingdoms located in the Southwest areas of Yunnan related to the conquest by the Yuan Dynasty were mostly Thai people. Exchanges between the Yuan dynasty and Thai people began following their incorporation by the conquests of the Yuan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