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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간들을 창조하는 것은 한 때 신에게만 한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유토피아적 사고 속에서는 새로운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의 새로운 인간은 내세에서 대안으로 생각된 가능성들을 위해 현실과의 단절을 상징한다(Vgl. Küenzlen 1997, 93-138). 유토피아적 사고는 현대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다양한 집단의 가치와 규범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적 질서의 대안으로서 그 사회의 유토피아는 이상주의와 전형적인 것의 조합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때 불완전한 현실은 완전무결한 완성 상태와 비교될 수 있다. 이 사회는 유토피아라는 거울을 통해 그 사회의 불완전성을 성찰하고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게 된다. 근대 초기의 정치소설 Staatsroman 에서는 이러한 대안으로서의 질서가 머나먼 섬의 제국에서 실현되었다(Vgl. Morus 2014). 하지만 계몽주의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유토피아는 미래로 옮겨간다. 즉 공간의 유토피아로부터 시간의 유토피아가 되었는데(Vgl. Koselleck 1982, 1–14) 이러한 유토피아는 추구하고 있는 미래에 소망하는 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현재에는 불가능한 것이 미래에는 가능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Die Krise der Sozialutopie und die Emergenz des Enhancement-Utopismus zeigen, dass es historisch variabel ist, was jeweils als unbestimmt und gestaltbar erfahren wird. Es ist eben nicht durch die Geschichte garantiert, dass eine gestaltbare Zukunft im Raum des Politischen gesucht und gefunden wird. Vielmehr kann in einer Epoche des "rasenden Stillstands", in der die Gesellschaft eher Sachzwängen hinterher eilt, als sich kollektiv zu gestalten, auch der individuelle Körper als Objekt utopischer Hoffnungen in den Mittelpunkt rücken. Dann erscheinen nicht mehr Reformen oder Revolutionen als utopische Gestaltungsinstrumente, sondern Pharmaka und Implantate. In einer Zeit, in der die Gesellschaft als Bereich ungestaltbarer Kontingenz erfahren wird, scheint nun die biologische Natur des Menschen als Bereich vermeintlich gestaltbarer Kontingenz in den Fokus zu rück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