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열기/닫기 버튼

정도전의 사상에 대한 연구는 역사, 철학,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져왔다. 본고에서는 주로 정치철학 분야에 집중하여 정도전의 사상을 살펴본다. 그의 배불사상과 그가 구상한 재상 중심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그간의 연구에서는 정도전을 성리학자 - 일부의 연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자를 신봉한 주자주의자 -로 보고 성리학의 내부에서 그의 사상을 조명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조선의 정치체제가 성리학을 기반으로 세워졌음을 고려하면 타당한 평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도전의 정치철학에 대해 평가하려면 그가 왜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지에 대한 물음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정도전은 토지 개혁을 주도함으로써 고려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시도하였고, 이어지는 조선의 건국에 당시 사대부들이 기대고 있었던 성리학의 논리를 차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정도전이 건국 후(1398) 쓴 『불씨잡변(佛氏雜辨)』은 고려 사회를 부정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점에서 벽이단의 이념서로서 평가하기보다,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조선경국전』, 『경제문감』에서 정도전이 구상한 정치체제는 재상을 중심으로 한 관료제이다. 종전의 종법사회에서는 국정을 운영하는 자리인 왕위(王位)는 능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세습되었다. 또한 군주의 자리는 하늘의 명을 받은 것이라 여겨져 국가의 흥망이 하늘의 뜻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정적제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재상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기획한 정치 체제는 천명(天命)을 통해 면책 받던 종전의 사회와 달리 정치적 책임을 사람에게 지우려 했다. 또한 백성들이 선한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된 생업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The thought of Jeong Do-jeon(鄭道傳, 1342∼1398) -regarded as a promotor of the Joseon Dynasty- has crossed lips in many ways. This article examines his political philosophy. Preceding researches considered Jeong Do-jeon as a Neo-Confucianist even looked him as “Zhu Ximst.” Considering the period, he could not help but accept Neo-Confucianism as a political ideology. However, regarding the social situation of that time, he did not believe in Zhu Xi’s ideology. Through a reforming the land of the Koryo Dynasty, he denied the system of the society all the way which is totally against with the Neo-Confucianism. Futhermore, he adopted Mencius in practical way and the doctrine of Interactions Between Heaven and Mankind and used it as a political tool to eliminate a political opponent. This study brings to light on the meaning of his political philosophy not just as an certain ideologist but compositive ideolog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