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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는 국가 상호간의 이해절충의 교섭과정이며, 그 외교의 성패를 가르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외국에 파견되어 상대국과 교섭하는 실무 담당자가 바로 사신(사자)이다. 고대 동아시아제국의 국제관계 특히 고대 한일관계사에 있어서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국가・왕권 간의 정치적 교류・교통(즉 외교교섭)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즉 가장 일반적인 외교형식으로서의 사신파견을 통한 사행외교가 있고, 특수한 형태로서 ‘질’이나 왕족의 장기간에 걸친 파견을 통한 특별외교(소위 특사외교), 그리고 혼인을 매개로 한 화친외교 등이 존재한다. 본고에서는 외교에 있어 사자・사신이란 어떤 존재이며, 그 자격・조건은 어떠한지, 그리고 사신외교의 결과는 사신의 능력에 따라 어떻게 귀결되는지, 그 성패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주로 왜국을 대상으로 한 백제와 신라의 외교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결론적으로 말하면, 백제의 대왜외교는 성공의 결과를, 신라의 대왜외교는 실패의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왜국을 대상으로 한 백제와 신라의 대왜외교의 성패는 결국 ‘질’ 체제=왕족외교의 성립・지속 유무라 할 수 있고, 백제의 대왜 사신외교의 성공 배경은 바로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 ‘질’ 체제=‘왕족’외교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백제와 왜 양국 간에 사소한 트러블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백제멸망 시까지 기본적으로 (對신라)우호친선・동맹의 관계가 지속된 사례는 세계외교사에 있어서도 매우 희귀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국제관계・외교에 있어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말해진다. 고대의 외교에 있어서는 바로 신라와 왜국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말은 고대 백제와 왜국의 관계에서는 결코 해당되지 않는 死語에 불과하다. 대립과 갈등이 온존하고 있는 작금의 한일관계・외교에 있어 필요한 외교상의 전범(典範)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고대 한일관계 속에 나타난 백제와 왜국(일본)의 외교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外交は國家相互間の利害折衷の交涉過程であり、その外交の成敗を決する重大な任務を帯びて外國へ派遣され、相對國と交涉を行う實務擔當者が、ほかならぬ使臣(使者)である。 古代東アジア諸國の國際關係、とりわけ古代の韓日關係史において、韓半島と日本列島との國家・王權の間の政治的交流・交通(つまり外交交涉)には、多樣な形態が存在する。すなわち、もっとも一般的な外交形式として、使臣の派遺を通じて行う使行外交があり、特殊な形態として、‘質’や王族の長期間にかけた派遣によって行う特別外交(いわゆる特使外交), そして、婚姻を媒介とする和親外交などが存在する. 本稿では、外交において使者・使臣とはどのような存在であり、その資格・條件はどうであるか、そして、使臣外交の結果は、使臣の能力によってどう歸結するのか、その成敗を決める要因はなにか、などの問題について、主に倭國を相手とする百濟と新羅の外交事例を中心に検討してみた。 その結果を結論的にいえば、百濟の對倭外交は成功という結果を、一方、新羅の對倭外交は失敗という結果を生んだといえるのである。そして、こうした倭國を對象とした百濟と新羅の對倭外交の成敗は、結局、‘質’體制=王族外交の成立・持續の有無にあるということができる。つまり、百濟の倭國にたいする使臣外交の成功の背景は、ほかならぬ長期間にかけて続いた‘質’體制=‘王族’外交の結果といえるのである。百濟と倭國との間には、幾度か些細なトラブルが存在したにもかかわらず、基本的には百濟滅亡の時まで一貫して、對新羅友好親善・同盟の關係が続いた。こうした事例は、世界の外交史においても類まれな場合であるといえる。 利害が尖銳に對立する國際關係・外交においては、‘永遠の友邦も、永遠の敵もない’とよくいわれる。古代の外交においては、正に新羅と倭國の場合がこれに当る。しかし、この言葉は、古代の百濟と倭國の關係においては、決して当てはまらない死語にすぎない。對立と葛藤が溫存している昨今の韓日關係・外交において、もし、必要な外交上の典範を探し求めるとすれば、それは他ならぬ、古代の韓日關係の中で確認できる、百濟と倭國(日本)の外交にあ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