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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온 귀화인들을 보통 사료에서는 향화, 투화라고 쓰고 있고 번역할 때 귀화라고 하였으며 이미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로 고정되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귀화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서 賜姓되었던 사람, 고려로 온 후 이름을 고친 사람, 賜姓名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貫鄕을 받는 것도 봉록. 채지, 임직지, 처향, 출신지 등이 있으며 貫鄕을 후손들이 스스로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국공주를 陪從하여 들어온 케링구나 陪臣은 서하인, 고려인, 南人, 몽골인, 위구르인, 무슬림, 한인으로 종족이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반면, 노국공주의 陪臣들의 공통점은 한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몽원정권의 통치와 관련이 있다. 제국공주가 고려로 下嫁할 당시는 몽골제국의 통치가 초보적인 단계였으므로 여러 종족이 정권에 참여 하였으며 한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노국공주가 下嫁할 시기는 원나라 말기였으므로 이미 한화되었으며 관원들도 한인이 위주였으며 원나라의 중국 통치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최고 통치권내에 한인이 점차 많아져 중요한 종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국공주의 陪從으로 온 케링구는 본인대에는 권력을 누렸지만 지속적으로 가문을 영속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덕수장씨는 다소 예외) 민간사회로 융합되어 고유민족의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원나라의 동란을 피해서 개별적으로 이주해 온 귀화인은 몽골족이나 위구르족이라 할지라도 그 선조는 중국에서 장기간 생활하여 한화된 엘리트 계층이었다. 대체로 중국의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전란을 피해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인접국이자 문화가 비슷한 고려로 이주하여 지적인 재능을 이용하여 관계로 진출하고 사인들과 교류하였다. 원명교체기에 원나라 반란세력의 영수의 후손인 명승과 진리 등은 명 태조 주원장에 의해 한반도로 이주되어졌다. 진우량의 아들 진리는 중국에서 결혼하여 고려로 와서 인지 이 가문은 그다지 동화되지 않았으며 진리의 아들이나 딸은 통혼이 이루어졌지만 과거급제자를 낸다거나 공을 세운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명승은 진리와 함께 고려로 온 명옥진의 아들로 파평 윤씨를 배필로 삼았다. 모친 팽황후도 같이 왔는데 궁중 복식을 잘 알고 있어 조선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명승의 후손은 과거에도 응시하고 부역을 부담하는 등 조선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갔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귀화인 중 鄕貫이 확실한 13개 성씨의 원류를 사료에서 찾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씨족(성씨)의 원류도 이주해 온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선조나 후손이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원나라부터 명나라 초까지 귀화인들은 다양한 면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賜姓이나 鄕貫을 받고 족보를 가졌던 성공한 가문도 있지만 족보를 가질 수 없는 이주민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한반도에 정착하여 오늘날 한민족의 일부로 동화되었다.


Chinese immigration to the korean peninsula in the Koryo period was generally described as Touxia or Xianghua in the original traditional documents, but this was translated as Guihua in recent usage. According to this study, the names of these immigrants were altered largely through various processes. Some immigrants acquired bestowed surnames, while others kept their original surnames while changing their first names only after arriving in Koryo. Furthermore, the immigrant's bestowed places of origin were decided for diverse reasons, and were related to certain regions to satisfy social, political, economic and geographical justifications. Some places of origin were associated with places like Bonglu and Caici, where the immigrant was granted the right to collect taxes and grain to support himself. In some cases, the place where the wife of an immigrant came from was bestowed as the place of origin. Among the immigrants from the time of Koryo to the early period of Joseon. The origins and past family history of 14 families, along with their authentic original ancestral homes were able to be identif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