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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북’에서 운명을 만난 임화가 일본을 경유하여, ‘영인본’과 ‘연구의 대상’이라는 형식으로 ‘남’으로 귀환했던 것은 1970년대였다. 1950-1960년대 한국의 반공주의적인 정치적 상황과 검열이라는 문화적 조건으로 인해 임화는 공식적인 표상공간에 등재될 수 없었는데, 이 글은 그 시기에 만취한 시인 김수영이 못다 불렀던 해방가요 <인민항쟁가>를 통해 섬광처럼 귀환하는 임화의 형상에 주목하였다. 김수영이 부른 <인민항쟁가>는 그가 목격하였던 해방공간 임화, 김순남, 오장환 등의 문화적 실천을 환기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전위이자 미학적 전위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의 문학자들은 해방 이전 조선문학의 성과를 물질화하여 새로운 창작을 위한 ‘전통’으로 자원화하는 동시에, 그것을 기반으로 음악, 미술 등 여러 양식의 미학적 전위들 및 새로운 세대의 문학자들과 소통하였다. 또한 해방공간 ‘거리의 민주주의’와 인민항쟁을 통해 그들이 창작한 해방가요는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로 확산되었다. 만취한 김수영이 부른 <인민항쟁가>는 냉전과 분단으로 인해 단절되고 망각된 혁명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었다. 1960년 4.19 혁명은 해방공간 전위의 실천과 혁명의 기억이 활성화하는 ‘지금시간(Jetztzeit)’이었다. 김수영은 시쓰기의 전위적 재구성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또한 1950년대 헌책방에 유통된 해방공간 출판물을 읽으면서 세계관과 자기의식을 형성하였던 1930년대 생 대학생들은 4.19 혁명의 선언문에서 임화의 시를 인용하였다. 다만 임화는 ‘혁명’의 상징이었지만, ‘전향’의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복합성을 가진 문학자였으며, 그 결과 그의 시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의미의 ‘뒤틀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비롯한 근대적 이념들은 선진적 서양과 후진적 한국이라는 대립구도 안에서 ‘유비’의 대상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혁명’과 ‘실패’의 모순을 한 몸에 구현한 임화라는 ‘전통’이 뒤늦게 활성화되었던 4.19 혁명이라는 역사적 경험은, ‘실패의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탈구축해야 할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It was in the 1970s that Im Hwa, who met fate in the 'North' in 1953, returned to the 'South' in the form of 'facsimile' and 'an object of research', via Japan. Due to the anti-Communist political situation and censorship of South Korea in the 1950s and 1960s, Im Hwa could not be listed in the official representation space. This article focuses on the shape of the Im Hwa's return, which is like a flash of glory through the liberation song "The Song of People's Struggle(Inminhangjaenga)", which Kim Su-yŏng could not sing to the end. Kim Su-yŏng's "The Song of People's Struggle" was to evoke Im Hwa, Kim Sun-nam and O Chang-hwan's cultural practices of the liberation space, which he witnessed. Litterateurs of the "The Alliance of Chosŏn Litterateur(Chosŏn Munhakka Tongmaeng)", which was a political avant-garde and aesthetic avant-garde, materialized the achievements of the pre-liberation Chosŏn literature and transformed it into a "tradition" for new creation. Based on this, they communicate with aesthetic avant-garde of various forms such as music, art, and a new generation of literary people. In addition, the liberation songs that they created through the 'democracy in the streets' and the popular uprising spread to the East Asia beyond the Korean peninsula. Kim Su-yŏng's "The Song of People's Struggle" was to recall the memories of the revolution that was cut off and forgotten by the Cold War and division. The 4.19 Revolution was 'Time Now(Jetztzeit)', which enabled liberation space's practice of avant-garde and the memory of revolution. Kim emphasized the necessity of democracy and unification for the avant-garde reconstruction of writing poetry. Also, university students who was born in the 1930s formed a worldview and self-consciousness by reading the liberation space publications circulated in the used bookstores of the 1950s, cited the poem of Im hwa in the declaration of the Revolution of 4.19. However, Im was a symbol of 'revolution', but in the sense that he had experience of 'conversion', he was a complex literate person. As a result, 'distortion' of meaning occurred in quoting his poetry. After liberation, modern ideologies including democracy in South Korea were understood as objects of 'analogy' within the binary opposition between advanced Western and less advanced Korea. However 4.19 Revolution was an political event that the tradition of Im Hwa, which meant contradiction of revolution and failure, activated belatedly. This historical experience requested the necessity and possibility of deconstruction of democracy with 'history of failure'.


1953年に「北」で消息を絶った林和が、日本を経由しながら「影印本」と「研究対象」となって「南」に戻ってきたのは、1970年代のことであった。1950-1960年代の韓国では、反共主義的な政治的状況と、検閲という文化的条件があった。そのため、その時期には林和が公式的な表象空間において掲載されるということは不可能であった。本稿は、詩人․金洙暎が酔っ払った際に、当時すっかり歌われなくなっていた解放歌謡である「人民抗争歌」を歌ったことを通じて、林和が閃光のように蘇ったことについて注目した。金洙暎が歌った「人民抗争歌」は、彼が目の当たりにしていた解放空間の林和․金順男․呉章煥らの文化的な実践を喚起させるものであった。政治的前衛であるとともに、前衛芸術家であった朝鮮文学家同盟の文学者たちは、解放前の朝鮮文学の成果を出版し、新しい創作のための「伝統」として活用した。同時に、彼らはこのような活動をとおして、音楽家․美術家などのさまざまな前衛芸術家と、新しい世代の文学者たちとの交流を図った。また、解放空間の「ストリートデモクラシー」と人民抗争をとおして彼らが創作した解放歌謡は、朝鮮半島を越えて、東アジアに広がっていった。金洙暎が酔っ払いながら歌った「人民抗争歌」は、冷戦と分断によって断絶され忘却されていた革命の記憶を喚起するものであった。1960年の韓国の4․19革命は、解放空間における前衛芸術家の実践と革命の記憶を活性化させる「現在時(Jetztzeit)」であった。金洙暎は、詩の創作を前衛的に再構成するためには、民主主義と朝鮮の統一が必要であると力説していた。また、1950年代の古本屋には、解放空間における出版物が流通しており、1930年代生まれの大学生たちは、それらの本を読みながら世界観と自己意識を形成することになり、4․19革命の宣言文の中で林和の詩を引用した。ただし、林和は「革命」の象徴であったが、「転向」の経験があったという点で、コンプレクシティ(複合性)を持つ文学者であった。その結果、林和の詩を引用する過程で、意味の「ひねくれ」が発生することにもなった。解放後の韓国では、民主主義をはじめとする近代的理念は、先進的な西洋と後進的な韓国という対立構図の中で、「アナロジー」の対象として理解された。しかし、「革命」と「失敗」の矛盾を一身に体現したという「遺産」が、後に4․19革命を活性化することになるという歴史的な経験は、「失敗の歴史」をとおして民主主義を脱構築していく必要性と可能性を提示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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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Hwa, "The Alliance of Chosŏn Litterateur(Chosŏn Munhakka Tongmaeng)", "Construction Publishing Company(Kŏnsŏl Chulpansa)", "Paekyangdang Publishing Company", Kim Sun-nam, Kim So-wŏl, "A Flower of the Mountain(Sanyuhwa)", O Chang-hwan, A Collection of Chosŏn Poetry(Chosŏn Sijip), Liberation Song, "The Song of People's Struggle(Inminhangjaenga)", Bookstore Mariseosa, 4.19 Revolution, Unification, Kim Su-yŏng, Kim Hyŏn-kyŏng, Yi Su-jŏng, Cho Dong-il, "A Declaration of 4.19 Revolution by Students of College of Arts and Science in Seoul National University(Seouldaehakkyo Munlikwadaehak Haksaeng 4.19 Sŏnŏnmun)", the avant-garde, the rear, democracy, democratic human, analogy, tradition, history of failure

林和, 朝鮮文學家同盟, 建設出版社, 白楊堂, 金順男, 金素月, 『山有花』, 呉章煥, 『朝鮮詩集』, 解放歌謠, <人民抗爭歌>, マリソサ, 4․19, 統一, 金洙暎, 金顕敬, 李秀正, 趙東一, 「ソウル大学 文理科大学 学生 4․19 宣言文」, 前衛, 後衛, 民主主義, 民主主義的 人間型, 「アナロジー」, 伝統, 「失敗の歴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