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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한국유학사의 분류방식으로서 주로 主理派, 主氣派 개념을 쓰고 있다. 이러한 분류방식은 高橋亨이 처음 썼다. 하지만 이 개념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편파적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主理=正學, 主氣=異端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高橋亨은 李滉=主理派, 李珥=主氣派라고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곧 李滉=正學, 李珥=異端이 될 수밖에 없다. 영남유림 柳은 李珥=主氣=異端이라고 비판했었다. 이 때문에 高橋亨의 분류방식은 객관적이지 못하다.본래 이 용어는 李滉이 四端=主理, 七情=主氣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하여 李珥는 四端=主理이나 七情=兼理氣라고 이황을 비판했었다. 그 후 영남유림 柳은 李珥의 理氣설을 主氣論이며 異端이라고 비판하면서 개념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개념의 변화는 20세기초 李震相學派와 田愚學派간의 主理.主氣논쟁에서 더욱더 잘 드러난다. 李滉의 계승자 李震相은 자신의 心卽理說을 主理, 正學이라 칭하였으나 李珥學派의 心卽氣說을 主氣, 異端이라고 비판하였다. 반면에 李珥의 계승자 田愚는 心卽氣說을 主理, 正學이라 하고 李震相의 心卽理說을 主氣, 異端이라고 반박하였다. 그후 대를 이어 논쟁을 계속하며 서로를 비판하였다. 물론 李滉의 四端=主理, 七情=主氣의 용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李震相學派는 李滉의 四端=主理, 七情=主氣를 사용하고 田愚學派는 李珥의 四端=主理, 七情=兼理氣를 그대로 썼다.당시 高橋亨은 主理=正學, 主氣=異端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李滉=主理, 李珥=主氣라고 한 것은 李滉을 지나치게 두둔하는 것이며 객관성을 상실한 편파적인 견해이다. 그의 李朝儒學史に於ける主理派主氣派の發達은 1928년에 발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잃은 그의 분류방법을 국내학자들이 아직도 쓰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따라서 본고에서는 主理=李滉學派, 主氣=李珥學派와 같은 분류방식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서 李滉學派=心學, 李珥學派=性學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