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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다케시마잡지’에 그려진 ‘막부의 울릉도 도해 금지에 따른 민간의 대응과 독도 영유권 문제’라는 주제로 당시 일본인의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지리적 인식과 영유권 인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첫째, 1692년 울릉도에서 처음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조우하여 영유권 분쟁이 생김으로써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의 조정과 막부 사이에 영토 분쟁이 발생했다. 마침내 막부는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포기했다. 이후 울릉도에 도항했던 일본인이 막부에 도해 금지를 철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막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는 새로운 사실​ 이 본 연구에서 밝혀졌다. 둘째,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는 오늘날과 달리, 사람이 살지 않았던 17 세기에는 울릉도, 독도의 지리와 환경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케시마잡지’을 통해 당시 울릉도의 지리와 환경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울릉도의 어류와 조류, 식물, 광물 등의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셋째, ‘다케시마 잡지’의 저술 목적은 하야시 시헤이가 “삼국통람도설”을 저술하고 주변 국가를 식민지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울릉도도 무인도이기 때문에 타국이 점령하기 전에 일본이 먼저 개척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계몽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케시마잡지’에는 독도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다. 따라서 이것은 “다케시마=일본영토”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本研究では「竹島雑誌」に描かれた'幕府の鬱陵島渡海禁止による民間の対応と独島領有権問題'というテーマで当時日本人の鬱陵島と独島に関する地理的認識や領有権認識について考察した。第一に、1692年鬱陵島ではじめて韓国人と日本人が遭遇してそれがきっかけになって朝鮮の朝廷と幕府との間に領土紛争があった。ついに幕府は鬱陵島と独島の領有権を放棄した。その後、鬱陵島渡航日本人たちが幕府に対して渡海禁止を撤回するよう嘆願書を提出したが、幕府がそれを受け入れなかったという新しい事実が明らかになった。第二に、今日は鬱陵島に人が居住しているため鬱陵島の地理と環境について良く知っているが、17世紀は無人島であったので鬱陵島と独島の地理や環境について正確に知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しかし「竹島雑誌」を通じて当時鬱陵島の地理や環境について知ることができる。さらに、鬱陵島の魚類と鳥類、植物と鉱物、当時の状況についても知ることができた。第三に、「竹島雑誌」の著述目的は、林子平が「三国通覧」を著述し、周辺国家を植民地として開拓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主張したように、鬱陵島も無人島であるため、他国が占領する前にさきに取って国益に役立てるということを啓蒙するためのものだった。最後に「竹島雑誌」には、独島と関連する内容は全くない。そのため、これが"竹島=日本領土"だという日本政府の主張を裏つける根拠にはなれない。以上の内容はただの民間の認識であるので、事実関係についてはさらなる新たな照明が必要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