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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프트만은 로제 베른트와 쥐들에서 여성의 성적 욕구 충족이 남성위주의 질서만이 존재하는 시민사회의 틀 속에서 어떻게 배척당하고 파멸되는가를 미혼모와 영아살해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질풍노도시대의 젊은 작가들이 당시 시민사회의 도덕과 질서의 허위와 부당함을 고발하기 위해 사용했던 영아살해라는 모티프를 하우프트만이 다시 끌어냄으로써 여성들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한 권리와 미혼모의 모성적 본능이 시민사회로부터 어떻게 억압되고 제한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로제 베른트에서 로제는 남성들에게 하나의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질 뿐이며, 그녀를 둘러 싼 남자들은 여성의 성에 대한 남성들의 저급한 근성과 의식을 대변한다. 슈트렉만은 자신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비열함과 폭력마저도 서슴지 않는 야만성을, 플람은 자의였든 강제에 의한 것이었든 로제가 슈트렉만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밝혀지자 가차없이 등을 돌리는 성적 이기심을 보여준다. 독일 시민비극의 전통적인 구조에서 나타나는 아버지 상처럼, 엄격하고 고루하며 편협한 시민적 명예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아버지 베른트 노인에게 있어서 로제는 하나의 소유물일 뿐이며, 그녀의 순결은 시민적 명예의식의 상징인 것이다. 베른트 노인 역시 헵벨의 마이스터 안톤처럼 ‘타락한’ 딸에 대해서 조금의 이해도 보이지 않으며, 이런 아버지와 세상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서 로제는 갓 태어난 아이를 살해한다. 여성의 성에 대한 이와 같은 의식은 비단 시민계급의 남성들에게서만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쥐들의 폴란드 하녀인 피퍼카르카 역시 남성으로부터 성적인 대상으로 이용당한 후 버림받고, 아버지로부터 도덕적으로 저주받아 어떠한 도피처도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락한다. 두 작품에서 여성의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규범은 하나의 추상적이며 압도적인 힘으로 나타나며, 구체적인 삶의 상황들 가운데서 개개의 인간은 거기에 대항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