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열기/닫기 버튼

『내 이름을 간텐바인이라고 하자』(1964)는 드라마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막스프리쉬가 『슈틸러』(1954), 『호모 파버』(1957)에 이어 발표한 세 번째 장편소설로서 이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남녀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나타내지만, 이 두 작품과는 달리 일인칭 서술자의 보고형태를 파기하고,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겨냥한 혁신적인 실험소설의 기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이 연구에서는 소설의 남성적 자아인 ‘나’ 자신이 가장 사적 영역이자 동시에 가장 기초적인 인간관계인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허구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얼마만큼이나 파국을 치닫는 현대적 남녀관계의- 때론 부부관계의 - 실존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또 자기가능성을위한 이러한 실험적 이야기들 안에 여성에 관한 남성의 어떠한 고정된 시각과사고의 틀이 발견되는지 분석을 통해 알아보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나’는 간텐바인, 엔더린, 스보보다라고일컫는 각각의 인물이거나 혹은 상대역, 혹은 이 모든 인물들의 모자이크 조합이다. 이 남성인물들이 여성인물인 릴라와 함께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남편, 아내, 애인이라는 삼각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의 이야기들이다. 여기서 특히 장님안경을 쓰고 장님행세를 하는 간텐바인은 안경 너머의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하지만 안경이라는 매개물을통해 일방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간텐바인은 관계 안에서의 변증법적 변화를꾀하지 못한다. 머리로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관계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그는 릴라가 속해 있는 세상과 내적으로 단절된다. 그 이유로는 여러 형태로 변형된 실험적 이야기들에도 일정한 ‘경험의 틀’이상수(常數)로 작용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보려는 시도가 자체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러한 경험의 틀은 남녀관계에도 적용된다. 머리와 육체, 이성과 감성, 사회적 역할과 성 등 이항 대립적 이분법이 초래한관계의 긴장 속에서 남성 인물들은 여성에 대해선 ‘낭만주의적’이며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전통적 관점을 변함없이 투영시킨다. 즉, 그들은 ‘거룩한 어머니’이자동시에 창녀라는 여성상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결국 ‘지적(知的) 베이비’로 남게 된다. 하지만 막스 프리쉬가 사적 영역인 남녀관계를 허구적인 실험 공간으로 채택함으로써 현대남성의 ‘허약한 자화상’이 유희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가지는 독자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외에도 문학을 통한 사적 영역의 공론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의 실험 등 이 소설이 던져주는 문제의식은 문예학의 범주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과학 영역에서도 지속적인 논의의 대상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