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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독일 작가 마르틴 발저는 프랑크푸르트의 파울 교회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 수상 후 국내외적으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그리고 여전히 되고 있는 연설을 하게 된다. 이 연설에서 발저는 무엇보다도 나치시대 극복과 관련하여 그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그래서 민감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일련의테마들에 대하여 도전적이고 선동적인 발언을 한다. 파울교회에서 행해진 발저의 연설을 분석해 가다보면 왜 그가 이러한 선동자가 되었는지 그 동기들이 드러나고 있다. 연설의 발생동기가 유태인 태생의 문학 비평가 마르셀 라이히 라니츠키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라니츠키는 그의 파괴적인 문학비평으로 독일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그래서 ‘문학교황’이라고도 불리는 비평가이다. 그는이미 1975년에 출간된 발저의 『사랑 저편에』에 대한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혹평으로 당시 발저에게 큰 고통과 분노를 안겨준 장본인으로서, 1998년 “문학4중주”라는 TV방송에서 라니츠키는 다시 발저의 베스트 셀러 소설 『분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분노가 시인을 만든다”라는 중국 속담도 있듯이, 발저는 자신의 고통이 크게는 독일민족이 당하는 고통이라는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나치시대 극복문제와 관련하여 아우슈비츠가 독일민족의 말문을 닫게 하고 머리를 떨구게 만드는데 더 이상 이용 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는 “아우슈비츠는 더 이상 지속적인 위협의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라는그의 파울 교회 연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파울교회의 연설과 관련하여 사회적 논쟁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었고, 이 논쟁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독일과 독일민족에 대해 많은 것들을경험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독일 사회에서 제한된 언어자유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는 언어자유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유태인과 나치과거에 대한 비판에 있어 누가 이야기 하느냐에따라 그 비판이 수용 또는 허용되기도 하고, 거부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그 비판자가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언어자유에서 독일민족이 가해자, 희생자 그리고 저항자라는 세 그룹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엿보게된다. 발저와 같은 지식인이 파시즘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에대해 언어적 제한을 받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발저의 연설을 향한 독일인들의전반적인 동의에서 그러나 그들 정신생활의 역동적인 심층구조가 공공연하게드러난다. 파울 교회에서는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발저의 연설을 들은 후 기립박수갈채까지 보냈다고 한다면, 유태인 최고 위원회 위원장 부비스가 그의 연설을 비판하면서부터 발저는 파울 교회 밖에서는 ‘방화범’이라는 낙인을 받게 된다. 히틀러의 민족적 대국에 대한 환상에 독일인들이 쉽게 빠지게 된 원인을 발저는 복종을 잘하는 독일민족의 성향에서 찾고 있다. 또한 아우슈비츠와 같은 반인간적인 산물을 발저는 그러한 독일민족의 성향에서 발생된 사악한 귀결로 보고있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히틀러 독일이 생겨난 원인을 정확히 풀 수없듯이, 그 누구도 설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아우슈비츠가 이러한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이상 ‘정상적’인 사회로의 독일은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