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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투르판에서 발견된 두 페이지의 페르시아어로 된 '摩尼敎贊美詩集'은 처음에 위구르 유목제국의 3대 카간인 뵈귀(759~779)이 재위하고 있던 寶應 2년(763년), 즉 마니교가 정식으로 위구르에 전해져 들어온 그 해에 필사가 시작되었다. 그를 이은 톤바가 타르칸의 재위기간(779-789년)에 마니교는 더욱 냉대를 받아 계속 침체기에 있었기에 있었기 때문에 필사 작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일위게시의 직책에 있던 쿠틀룩이 天山 지역에 있는 北庭으로 진출하고 난 다음 카간으로 즉위하기 이전인 貞元 6년(790년) 가을부터 貞元 11년(795년) 4월 사이에 마니교는 짧은 기간의 전성기를 보냈고 '摩尼敎贊美詩集'의 「序言」(곧 이전에 跋文이라 부르던 것)이 이 무렵에 작성되었다. '摩尼敎贊美詩集' 필사 작업의 중단과 재개는 바로 위구르의 정권 교체(야글라카르 씨족에서 에디즈 씨족으로)와 北庭을 중심으로 한 天山 주변 지역의 정치 형세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발견 당시에 겨우 「序言」과 부분적인 「內容目錄」만이 발견된 원인은 983년 高昌위구르왕국이 법으로 마니교를 금지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며, '摩尼敎贊美詩集'은 마땅히 이 시기에 박해를 받아 폐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밖에도 「序言」 중에 나타난 튀르크어는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토착 주민들의 튀르크화의 진전 과정과 튀르크어의 분화, 그리고 그 변이 과정에 어떠한 실제적인 증거를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