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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 퐁티는 주체와 객체를 명확히 나누는 이분법을 거부하는 ‘세계에로의 존재’인 몸을 사유의 본원적인 위치에 배치한다. 그 후 그는 주객이분법을 넘어서는 몸과 세계의 관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정립하기 위해‘살(Chair)’이라는 주제를 철학적 개념으로 사유한다. 주, 객체가 근원적으로 함께 존재하는 살, 혹은 주, 객체의 자리가 환위될 수 있는 시각적지각의 상호 교차성이 생성하는 총체적 장소로서의 살을 철학적, 미학적주제로 사유하면서 살을 둘러싼 존재와 세계의 교직과 교차에 주목하는것이다. 즉, 그에게 ‘만짐은 만짐을 만짐’이라는 명제는 ‘봄은 봄을 봄이다’라는 명제로 나아가게 되고, 시선은(봄은) 사물을 만지는 행위이고 봄과 만짐은 하나로 통일된다. 봄이 만짐과 같은 구조로 작동하고 보는 것과 보이는 것들이 하나라는 인식은 곧, 내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나를 보고 있는 사물을 보는 것이며, 이제 이 가시적인 세계는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된다. 회화의 가시성에 관한 예에서 보듯, 화가(보는 자)와 사물(보이는 것)사이의 일종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사물들이 화가를바라보는 것이고 그저 보이기만 할 뿐이라고 여기던 가시적 사물들이 보는 자의 가시성을 얻게 되고 보는 자가 사물의 물체성을 얻게 되는 ‘기묘한’ 교환 체계가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시선은 사물과 타자의시선과 교차함을 넘어 그들의 시선을 통해 존재하기에 보는 자가 가시적인 계열에 편입되면서 더 큰 전체로서의 세계와 떨림의 관계를 생성한다. 여기서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가시성, 혹은 사물들 사이의 가시성은 사물의 물체성 자체를 형성하는 지각적 총체로서의 살로서, 살 조직으로 이해된다.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거울 속의 이미지들의 무한한교섭의 연속체 속에서처럼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끝없는 능동성과수동성은 어느새 동일한 것으로 되며 본다는 사태의 새롭고 심오한 차원의 나르시시즘을 작동시킨다. 이 나르시시즘 안에서 우리는 물체의 표피를 바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에 의해 보여지고, 그 물체 속에존속하고, 그곳으로 이주하고 있다. 그렇게 보는 자와 가시적인 것은 분별할 수 없는 가시성 자체의 원초적 익명성 속에서 존재한다. 이 원초적 익명성은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관계를 지나 사물과 존재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이 지점이 바로 개별적 예술 작품들이 실천하고 있는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의 미학적 긴장이 생성되는 미학적 체험의 공간이다. 이러한 미학적 공간을 서술하기 위해 우리는 영화감독 필립 하렐과 웨인 왕, 후시아오시엔등의 영화 이미지들을 불러내어 분석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영화 이미지들이살의 원초적 익명성을 실천하는 과정을 살피고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의 심연이 어떻게 이미지의 표피에서 드러나고 숨는지를 보는 것이다. 영화 이미지의 훌륭한 실현이 이루어질 때 이러한 ‘미스테리’한시각적 체험은 인물과 서사를 해체하는 듯 하면서도 다시 그 인물과 서사를 긴밀하게 연결하거나 풍부하게 만드는 인식적 해석 작업을 실천할 수 있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심연에서 드러나는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유쾌하고도 엄밀한 긴장의 결은 촘촘히 살의 조직으로 짜여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