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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은 보편적인 진리나 규범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문구로 전달한다는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나 삶 자체에 대한 지혜로운통찰을 담고 있다는 이러한 의미적 보편성 때문에, 다양한 언어・문화권에서 표현 방식은 조금씩 상이할지라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를 전달하는 속담을 찾아볼 수 있으며, 따라서 번역학의 분야에서 속담은 흔히등가성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에 가장 적절하고 그 결과물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예로 여겨져 왔다. 본고에서는 움베르토 에코, 앙투안 베르만,앙리 메쇼닉 등의 번역이론에 의거하여, 과연 등가성이라는 개념이 문학작품 내에서 속담이 발생시키는 효과를 올바르게 전달하기에 충분한지재고해 보았으며, 언어유희와 패러디 등 언어의 독특한 사용으로 인해 번역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던 루이스 캐럴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속담 표현들을 중심으로, 한국어와프랑스어로의 번역에서 이들 속담이 어떤 방식으로 옮겨졌는지, 그리고작품 전체의 흐름과 고유한 논리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지 분석하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사용된 속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고찰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속담이 전달하는 관례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와 그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 속담의 어구 자체에 쓰인 소재와 표현은 문학 작품의 내적인 논리와 구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등가 개념에 의거하여‘보편적 의미’의 전달을 위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도착 문화권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숙한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성공적인 번역이 될 수 없다. 두 번째는 속담을 이용하여 음성적・의미적으로 유사한단어들을 이끌어내는 언어유희가 구사된 예이다. 유머를 발생시키는 요인이자, 루이스 캐럴의 작품세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언어유희를 도착 문화권의 독자들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번역자는 우선 비평가와 같은 시선으로 언어유희가 구사된 대목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이해한 뒤, 모국어의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단어 대 단어의 일치라는 단순한 전략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차원에서 원문의 창조적 재구성을 시도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작품 집필 당시널리 알려져 있던 속담이나 관용구를 저자가 교묘하게 패러디한 대목들이 있다. 이러한 패러디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라는 제한적인 시간적・공간적 맥락에서 비롯하는 것이니만큼 현대의 독자들로서는 즉각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는데, 이런 경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자는 베르만이 ‘번역의 버팀목’이라 명명했던 다양한 수단들, 이를테면번역자 주나 해설 같은 방식들을 동원할 수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토대로, 우리는 널리 알려지고 믿어진 바와는 달리 단순한 등가성 개념은 속담이 문학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작품의 고유한 논리 등 다양한 요소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재구성해 내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밝혔다. 나아가, 번역자가 예리한 비평가이자 분석가의 자세로 원문이 지닌 특징들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기 모국어로 가장 잘 옮겨내려는 노력을 계속할 때, 번역은 언어를 새롭게 할 수 있는그 고유의 힘을 발휘하리라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