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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세기 초 거의 비슷한 시점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던 이상(1910-1937)과 앙리 미쇼(Henri Michaux 1899-1984)가 각각 창조한 -공통언어를 위협하는- « 새로운 시(詩) 언어 »에 대한 고찰이다. 이상과 앙리 미쇼는 사회적 지리적 –현실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론 유사한 체험을 한 시인들이다. 이상과 미쇼는 « 유물론적으로 » 존재했던 현실세계와 거의 대립되는 상(像)의 세계를 « 난해하고 추상적인 » 문체로 그려낸다. 또한, 두 시인이 비슷하게 증언하는 문학 여정은 –마치, 교차점과도 같이- 시인 각자의 시야 안에 잠재하고 있던 각각의 진실이다. 생존 시 두 시인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마치 비현실의 공간 속 어느 시점에서 마주치기라도 했던 것처럼 비슷한 물음들을 창작세계 안에 나열해 놓는다. 이상과 미쇼 — 동시대인들이 추구한 문학과는 다른 문학을 추구한 독특한 시인들이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생존했던 시대에도 그들은 한국에서 또 프랑스에서 문학계의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이들에게 주어진 '이방인'이란 위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결국, 단순히 규정하자면, 이들이 전시하는 언어의 세계가 <기이함> 내지는 <추상>이란 것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언어의 파괴, 기호들의 난무, 해석 불가능한 상징들(문자나 상으로 표현되는 상징들)의 활용, 이것이 오늘날 이상의 문학을 또 미쇼의 문학을 <추상>으로 귀결하는 요소들이다. 이처럼, 이상/미쇼가 늘어놓는 문자들은 마치 어떤 특별한 상징체계의 기호들인 것만 같아 보인다. 본인들 말고는 아무도 그것을 읽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우려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 난해성은 '사유할 수 없음'이란 단절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광활한 사유의 영역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오늘날 미쇼는 프랑스 문학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또한 이상이 제시하는 사유의 영역도 많은 연구자들을 꾸준히 매료시키고 있다. 이들이 젊은 시절에 만들어낸 <기이한> 또 <추상>의 시학은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각자 « 정체불명 »이란 의심을 야기하는 자아의 세계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이 자아의 세계를 현실을 대표하는 바깥세상과 대립시키면서, 존재론적 문제를 제시한다. 하지만 각자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론적 문제란 유사성 이전에, 두 시인 간의 비교를 가장 크게 뒷받침해주는 것은 이들 각자가 이뤄낸 <새로운 언어> 창조이며, 그 창조를 향해 끊임없이 진보했던 열정이다. 마치 미쇼가 1932년 서울 여행시 이상을 만나 <새로운 언어> 탐구에 대한 담화라도 나눴던 것처럼, 두 시인은 유사한 시어들로 각자 문학의 근본적인 주제인 존재론적 문제를 얘기한다. 기존 언어의 위기를 조장하고, 새로운 모습의 시(詩)언어를 제시하는 두 시인의 문학 세계를 비교하는 것 — 이것이 바로 이 논문의 목적이다. «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 »이 아닌, 새로운 무엇을 열망하는 각 시인이 창조한 새로운 언어의 형상과 그 형상화 과정을 조심스럽게 열거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