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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랭보는 항상 한 곳에 정체하거나 멈추지 않고 부단히 미래(l'avenir)와 미지(l'inconnu)를 향해 움직이는데, 바로 이런 랭보 특유의 경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시적 시간이 바로 그의 시 세계에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현재(présent)’다. 왜냐면 시인에게 있어 ‘현재’는 다른 어떤 시간보다 생성(devenir)의 순간을 가장 잘 표현하는 역동적이고 활기찬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옥에서의 한 철 Une Saison en enfer』에서 보여준 정신적·예술적 위기를 뒤로한 채,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하려는 랭보의 시적 의도와 경향을 바로 ‘현재’라는 시간이 가장 잘 드러내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일뤼미나시옹 Illuminations』시집에서의 시적 배경과 진행의 주된 시간은 현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랭보 시 세계의 주된 시간은 다른 어떤 시간 영역보다 현재에 대한 선호와 함께 시인의 시 세계가 전개하듯 시간의 '경계(seuil)'에 위치하면서 그 시적 시간의 이미지들이 형성하는 '즉각성(또는 순간성instantanéité)'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일류미나시옹 Illuminations』시집은 랭보가 그의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시간 개념을 중시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어느 이성(理性)에게 A une Raison」라는 시에서는 랭보의 시 세계가 새로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제시되는데, 그것은 바로 ‘새로운 조화(nouvelle harmonie)', '새로운 사랑(nouvel amour)'이다.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시인은 “우리들의 운명을 바꿔라. 재앙들을 거르라. 시간으로부터 시작해서(«Change nos lots, crible les fléaux, à commencer par le temps»)" 라고 외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옥에서의 한철』이 보여주는 미혹적이고 몽상적인 시 세계와 시인 자신의 자기 파괴적인 내적 고찰을 통해, 이전의 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 세계를 추구하려는 랭보에게 있어, 모든 시적 시도는 먼저 시간(temps)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일뤼미나시옹』이 잘 보여주듯 시적 시간은 다양한 다른 시적 요소들과 서로 상호 작용을 아주 짧은 시간에 신속하면서도 그러나 강렬하게 이뤄진다. 현실의 모든 것을 파괴 또는 해체하며, ‘장소와 사람들을 변형하기’라는 방법을 통해 “모든 모습들 사이에서 온갖 특성을 지니는 존재들과 함께 여러 감정적 집단의 강렬하면서도 신속한 꿈꾸기”로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하게 되는 기본적인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강렬하지만 순간적인 이러한 직접적이고 순간적인 시 세계는 문학에서 그를 침묵으로 이끌고, 문학에서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해체하고 현실에서 일상인으로서의 랭보를 재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 자신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것에 대한 끝없는 파괴, 해체 그리고 재창조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