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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김심언과 최충의 봉사와 건의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것이다. 우선 김심언, 최충의 주장에서 공통점을 먼저 찾아 보고자 한다. 현재까지, 김심언의 ‘6정 6사’와 ‘자사 6조’에 대한 논고가 두 편 있다. 이 연구자들의 논고를 바탕으로 하여 필자는 몇가지 점을 보충하고자 한다. 김심언의 봉사(封事)를 도표로 정리하여 분석하면서 기존 학자들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문장 형식의 특이함에 주목하고자 한다. ‘왕 하교 왈(曰)’의 문장은 마치 성종이 하교하는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김심언이 봉사를 올린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또 봉사의 도입부 문장에서 기존 연구자들이 놓친 부분인 주공(周公)과 성왕(成王)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훈요십조」와 연관하여 밝히고, 또 당나라 선종대(宣宗代)를 거론한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 그 부분은 성종의 후계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이후의 봉사 내용인 ‘6정 6사’와 ‘자사 6조’를 분석하면서 확인하고자 한다. 김심언의 봉사와 최충의 건의 사이에는 ‘봉행 6조’가 현종대에 나오게 되는데 그 이유를 잠시 검토한 다음에 최충의 건의를 다루고자 한다. 최충의 ‘6정 6사’와 ‘자사 6조’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는 없지만 부분적으로 다룬 논고가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된다. 특히 최충이 제안한 ‘6정 6사’와 한나라 ‘자사 6조’는 덕종에 대한 요사(夭死)의 염려 때문에 제시한 것이라는 견해는 탁월한 분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필자는 약간의 자료를 보완하면서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이 김심언과 최충이 다른 시대 상황에서 같은 ‘6정 6사’와 ‘자사 6조’를 올린 이유이자 결론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밝히는게 이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The time proposed the ‘Yukjeongyuksa(六正六邪)' was different from ChoiChung(崔冲) and Kimsimeon(金審言). However, the political views of this were matched. Because of the need for succession to the throne. When the Seongjong(成宗) ruled, while Kimsimeon(金審言) suggested the Mokjong(穆宗) this scheme, Choichung(崔冲) suggested this for the Deokjong(德宗). Kimsimeon(金審言) proposed the scheme after Choiseungro(崔承老) died, whereas Choichung(崔冲) made a recommendation this after Choihang(崔沆) died. All of these were associated with ‘Hunyosipjo(訓要十條)' which gave the justification to the successor. The political force of Choihang(崔沆) and Kimsimeon(金審言) had the same goal-oriented, and it had adopted Confucianism as a political ideology. They were recruited through the examination system. They recommended ‘Yukjeon(六正)' to the officials to observe, while they also pointed out that ‘Yuksa(六邪)' is incorrect. Also they demanded the province to keep the ‘Jasayukjo(刺史六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