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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명은 줄곧 아주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는데 양국 간의 관계는 전형적이고도 실질적인 조공관계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 정치, 경제, 문화의 번영, 발전과 더불어 동북아시아의 정치 무대에서 조선의 지위는 나날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조선과 중국은 우호 관계를 발전시킨 바 이 시기에 명과의 잦은 사신 왕래, 서책 무역, 말 무역 등은 그 구체적인 상징들이다. 이 시기 조선과 명의 정치 관계는 이미 태조시기에 소원했던 것에서부터 태종시기의 적응과 조화를 걸쳐 정치상에서는 상호 신뢰하고 경제상에서는 교류가 빈번하며 문화상에서는 상호 침투하는 전형적인 조공책봉관계로 발전하였다. 조선과 명은 각각 사신들을 파견하였는데, 그들의 상호 왕래는 양국 간의 정치,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대와 교량의 역할을 발휘했는 바 두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의 연계를 한층 더 발전, 촉진시켰고, 양국의 정치, 경제, 문화 관계의 빠른 발전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며 상호관계를 강화시켰다. 명 시기의 중국은 조선과 아주 긴밀한 국가 관계를 유지했다. 그 구체적이고도 주요한 표현들은 오랜 기간 지속적이고 온전하고 정규적으로 유지한 조공책봉(宗藩貢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명은 양국 간 조공 사무의 관리와 제도의 운영에 비교적 완벽했다. 조선의 국왕과 사신 및 조선에 파견된 사신들의 접대 등의 문제에 대하여 아주 엄격한 규정을 정한 것이다. 洪武 초년, 明 太祖는 사신을 해외에 파견했는 바, 다음과 같은 명의 대정 방침을 사방에 포고한 바 있다. 즉 “중국이라는 대국은 주변 나라를 지키고, 서로 안전을 도모할 것이며, 주변 나라를 침략하거나 모욕을 주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 『明太祖實錄』 卷21, 洪武 元年 8月, “君位中國 撫諸夷於八極 各相安於彼此 他無肆侮於邊陲 未嘗妄興於九伐”고 선언한 것이다. 명은 元이 시행한 주변에 대한 무한한 확장정책을 무력으로 통제하는 정책과 사신 왕래, 조공 하사의 형식으로 바꾸어 주변 국가들과 새로운 관계의 수립을 모색했던 것이다. 조선 건국 초기 이성계는 명과의 정치 관계를 아주 중시하였는데, 새롭게 탄생한 조선왕조의 왕인 이성계는 하루라도 빨리 명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는데, 명과 평화적인 외교관계를 건립하여 향후에 봉착하게 될 문제와 우환을 미연에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배경 하에 조선은 명과의 정치 관계는 물론 경제 교류 관계에 있어서도 사신들의 매개 역할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신들은 한 정권의 외교정책의 구체적인 집행자로서, 외교정책의 순조로운 진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신들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은 국가의 형상을 대표하고, 심지어 양국 정권의 외교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Emissaries played a significant mediating role in the relationships between Choson and Ming Dynasty. The stable development of bilateral political relations had close connection with the emissaries’ intercourse of both sides. The number of the emissaries’ intercourse and their effective communication had great impacts on the development of relations between Choson and Ming Dynasty and vice versa. The emissaries of Choson constantly paid tribute to Ming Dynasty, and they were invested with titles and honorary peerages in return. The emissaries completed their missions and set up a communication bridge for the two cou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