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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고린도교회에서 만들어진 바울의 지도자 상(image)을 고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바울의 수사적 능력에 집중할 것이다. 이는 1세기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수사학적 능력은 한 공동체의지도자의 역량을 판단하는 잣대였다는 확신 때문이다. 지난 세기 많은바울 학자들은 바울을 수사학자로 보면서 그의 서신을 그리스-로마의수사학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본 고는 바울을 교육받은 그리스-로마 수사학자로 보는 입장이 정당한지를 유대 종교와 교육적 배경(빌 3:5; 갈 1:13; 고후 11:22), 그리스-로마의 수사적 능력(고후 10:10‐11; 11:6; 고전 2:1-5)에 대한 바울의 자서전적 주장을 근거로 논의할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설득력 있는 기술’을 이용한 언변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며(고전 2:1-5), 더불어 고전 수사학적 기술에 있어서 ‘아마추어’(ivdw,thj)로서 그의 실제 사역과 선포는 수사적 기술과 효과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힐 것이다. 물론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바울서신에는 그가 당대의 여러 수사학적 기술을 사용한 흔적으로 볼수 있는 증거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거들 자체가 그가 수사학을전문적으로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바울의 수사적기술로 알려진 것들은 회심 후 그가 그리스-로마 지역 선교여행 중익혔던 대중적인 의사소통 기술이라는 주장과 그 당시의 대필 문화의관점에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관측으로 세 가지 결론이 내려질 수 있다. 첫째, 바울서신을그리스-로마의 수사학적 표준에 맞추어 분석하려는 일련의 학자들의시도는 바울의 자서전적 고백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둘째, 반대로 바울의 문학적 수사적 능력 자체에 회의적인 학자들 역시 바울이 보이는 언어적 수사적 능력이 1세기의 구술-청각 의사소통 문화를 고려할때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위의 결론은 수사학적 능력에 비례하여 지도자 역량이 판단된 그리스-로마 사회의의사소통 문화에서 수사학적으로 아마추어였던 바울의 리더십이 고린도 교회에서 어떻게 비춰졌는지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수사적 기술은 대중적인 지도자에게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던자격 조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울의 아마추어적 의사소통 전달기술은 그의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는 육체에 자랑할 것이 없는 지도자라는 상(image)을 만들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수사학과 관련해서 만들어진 ‘육체’에 자랑할 것이 없는 바울의 지도자 상은 고린도후서 13:4이 밝히듯이 그는 복음의 내용(message)‒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말로만 전하는 사역자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전파자(messenger)의 삶의 모습으로도 그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를체현하려 한 사도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