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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러시아어의 ‘화, 분노’라는 정서개념에 대해 인지언어학적 접근법(특히 Lakoff 1987)을 활용하여 언어보편적 은유와 환유, 그리고 러시아 문화에 특징적인 문화적 ‘프레임’(Fillmore 1982, 1985)에 의한 환유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본 논문이다. 정서개념은 문화보편적 그리고 문화상대적 개념화가 모두 나타나는 흥미로운 의미영역으로 전자는 인간의 몸이 정서에 반응하는 생리적 작용의 보편성이 언어보편적으로 어느 정도 발견되기 때문이고 후자는 정서가 주어진 사회, 문화, 역사적 소산물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분노 감정의 환유는 신체 각 부위, 머리, 다리, 눈(썹) 등의 행위나 변화로 나타나거나 전율, 숨참, 안색의 변화 등으로 나타나고 은유는 영어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가령 압력 용기에 들어간 끓는 액체, 불 등으로 개념화된다. 특히 압력용기안의 끓는 액체는 폭발하거나 가스로 상승하는 등의 변화를 보이는 등 정교화된 은유로 개념화된다. 본 논문에서는 특히, 정서적 원인과 신체적 반응(발열, 혈압 상승 등) 사이의 인과관계나 자연물질의 존재적 인접성에 의한 환유가 은유의 전제로 나타나는 경우에 주목하여 환유와 은유의 복합과 상호작용(Goossens 1990)을 살펴보았다. 이로써 기존의 환유, 은유의 개념영역의 자의적 양분화를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러시아어에서 ‘화, 분노’에 대한 순수한 은유는 공격적인 동물이나 투쟁해야 할 적으로 개념화되는 것으로 한정된다. 이 경우 전자 역시 환유와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며, 후자는 다른 부정적 정서개념에도 활용되는 은유이기에 러시아어에만 특수하고 고유하게 나타나는 은유는 찾기 힘들다. 반면, 명사구의 연어에서는 특히 분노 정서의 기본적 차원의 어휘인 gnev의 경우, 환유적 의미 확대가 발견되어 신의 도덕적 심판으로서의 분노 프레임, 다시 말해 기독교의 문화적 프레임이 작용함을 알 수 있으며 신성함과 정당함, 나아가 사회적 자아 형성에서의 분노의 중요성이 부각된다고 하겠다. 결국 영어의 ‘anger'와 달리 러시아어의 화, 분노 관련 개념은 반응적이고 통제불능의 부정적 정서로만 단정할 수 없고 정당하고 정의로운 정서적 힘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이나 성격을 특징짓는 것으로 개념화된다는 점에서 러시아문화에 특징적인 개념화라 하겠다. 더욱이 gnev에 나타나는 분노 개념은 사회적 자아의 독자성, 정체성, 자존감과 연관되어 소설의 등장인물 성격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