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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뒤뛰 (Georges Duthuit) 와의 대화에서 사무엘 베케트는 그의 예술적 정언명령이 “표현할 대상도, 수단도 없으며, 표현의 가능성이나 힘도 욕망도 없이, 표현해야할 의무와 더불어” 지속되는 어떤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요 작품들을 불어로 쓴 아일랜드 태생의 베케트는 자신의 작품을 추후 영어로 번역하며 모국어와 고국을 스스로 박탈함과 동시에 강박적으로 그것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미적 감수성과 작품의 이중적 존재와 더불어 그는 자신의 것이자 자신의 것이 아니기도 한 독특하고, 낯선 미지의 목소리를 창출해낸다. 따라서 우리가 그의 작품을 “모던”하고 “트랜스내셔널”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바로 그러한 특성이 패러독스이자 아포리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그의 주인공들은 점점 “한갖” 글쓰는 목소리들로 격하되어, 마침 그들이 언어와 의미의 “혼돈” 속에 빠져있을 때에 뿌리상실과 이해불가능성의 첨예한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한 목소리들이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혼돈을 조율하려 시도하고 또 실패하면서, 그것들은 불가피하게 - 문법 속의 신과 더불어, 의미를 부여할 종결에 대한 믿음이 없는 - 하나의 긴 문장임이 드러난다. <무(無)를 위한 텍스트들> 과 <어떤가요> 와 같은 작품들은 무능과 실패의 독특하고 역동적인 미학을 실행시키면 서구문명의 잔해와 화석으로부터 일관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의 실패들을 그리고 있다. 완성되지도 종결되지도, 그렇다고 무(無)를 성취하지도 못하면서 목소리들은 결국에는 그것들을 지지하는 혼돈에 더 많은 “워드싯”을 더하면서 지속된다. 이러한 패러독스에서 베케트가 이끌어내는 결코 잠재울 수 없을 듯한 에너지를 통해 우리는 단지 혼돈 속에 머무는 것에서 어떤 고통스러운 감동과 찬탄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