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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貫道載道道文一致의 상호관계와 개념의 차이를 각각의 용어가 나온 원전을 검토하여 변별한 것이다. 周敦가 처음 제창한 재도는 李漢의 관도와 다르지 않아 도를 중시하되 문의 기능을 결코 경시하지 않았다. 정이에 와서 문을 經으로 바꾸었고, 그 이후로는 재도는 주로 儒家의 경전에 대한 정의로 주로 사용되었다. 관도는 문은 도를 꿰는 것이라는 말로 문의 기능을 정의한 것이고, 재도는 도를 싣고 있다는 말로 도를 싣는 기능보다 도를 현재 싣고 있는 것을 정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재도는 문에 대한 정의로 쓰이기도 했지만 경에 대한 정의로 더 많이 쓰였으며, 관도는 경에 대한 정의로는 쓰인 例가 없다.도학파가 고문가를 본격적으로 비판한 것은 宋나라 朱熹에 이르러서이고 그것도 주로 당시에 유행하던 蘇軾의 문에 한정된 것이었다. 주돈이의 시대에는 아직 소식의 글이 나오지 않았다. 주희의 관도 비판은 용어의 적절치 못함을 지적한 것이지 이한이 도보다 문을 중시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관도는 물론 재도란 말도 주희는 전혀 쓰지 않았는데 역시 용어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듯하다. 관도 비판의 실제 목적은 道文一致論에 입각하여 당시에 유행하던 소식의 문을 비판하기 위한 논리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즉 소식의 사상과 학문을 비판하기 위해 소식의 特長인 문학을 비판한 것이었다.주희의 문학론에는 본원론과 현상론, 원칙과 실제의 두 층차가 서로 모순되는 듯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그 源頭가 되는 것은 理氣論이다. 주희는 本原界에서 理의 순수성을 찾아서 지키는 한편 현상계에게 理를 실현하는 氣의 존재를 결코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의 학문은 끊임없이 원칙을 세우고 강조하는 한편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고 현실을 인식하면서 원칙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본원과 현상, 원칙과 실제를 때로는 합일하고 때로는 분리하는 주희의 이러한 사유체계가 문학론의 내적 기반을 구축하여 도를 밝히는 자리인 本原論, 윈칙론에 섰을 경우에는 儒家의 경전 외에는 어떠한 글도 결코 도문일치가 된, 문장의 전범으로 인정할 수 없지만, 현실의 자리로 내려와서는 韓愈歐陽脩의 글, 李白杜甫의 시 뿐만 아니라 그 후대의 문학 작품일지라도 그 層次에 두고 일정한 자리 매김을 할 수도 있었다.문학론의 구체적인 담론에서 고문가와 도학파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도재도와 같은 원론적인 용어를 가지고 거꾸로 소급 적용하여 고문가와 도학파의 문학관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고문가와 도학파는 문학의 실제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재도와 관도 같은 용어는 문학의 목적을 밝히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했고, 엄밀히 구별하지 않았다.


A Study on the Correlations between Gwando, Jaedo and Domunilchi, and Their Concepts and Charac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