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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시각에서 일본근대문학을 살펴 본 이번 연구에서 얻은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한국적 한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었던 일본근대문학작품은 얼마되지 않아서, 히구치 이치요, 모리 오가이, 시마자키 토손, 이시카와 타쿠보쿠, 요사노 아키코 등의 작품만을 제한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다. 한국적 한의 이미지를 찾아 볼 수 있는 작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다카세부네 [高瀬舟]』와 『라쇼몬 [羅生門]』 등 한의 이미지를 찾아 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근대일본사회와 일본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 경우에는 다루지 않았기에 보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이 이미지를 통해 근대일본을 새롭게 다시 조명하고자 한 본 연구의 의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둘째로, 『기러기』와 『십삼야』를 통해, 전근대적인 가족제도로 인해 근대일본의 여성들이, 현실 속에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았으며, 그녀들의 가슴속에는 천이두가 이야기하는 서러움으로서의 한과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바램으로서의 한이 자리 잡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셋째로, 메이지 정부가 취한 사민평등의 신분제도가 완전하게 정착되지 않아, 신평민이 된 ‘에타 [穢多]’ 들이 사회적 멸시와 냉대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으며, 그들의 가슴에 맺힌 원통함으로 인해 원(寃)으로서의 한국적 한이 맺혔다는 사실을 시마자키 토손의 『파계(破戒)』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로, 근대일본의 노동자와 농민 등의 서민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메이지일본의 서민들에게서도 가난에서 오는 한국적 한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섯째로,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합방 등을 거치며 군국주의를 향해 거침없이 치달았던 과정에서 희생된 일본인들과 이러한 당시 상황을 우려하는 일부 지식인들에게서도 그와 같은 사회상황에서 벗어나고픈 바램(願)으로서의 한국적 한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얼마 되지 않는 작가와 작품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한국적 한의 이미지를 정리함으로써, 개국과 근대화로 상징되는 일본의 메이지 시대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다 볼 수 있었다는 점에, 본 연구의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今回私は読者論の立場から、日本の近代文学を再照明してみた。が、その結論は以下のことくである。一つ、日本の近代文学家として広く知られている樋口一葉、森鴎外、島崎藤村、石川啄木、与謝野晶子のどの作品から韓国的な恨のイメージが発見できた。. 二つ, 『雁』と 『十三夜』から、前近代的な家族制度により近代日本の女性たちは作品のなかはもちろんのこと、現実の世界ででも耐えがたい苦痛のなかで生きており、彼女たちのこころのなかに韓国的な恨ができていたことがわかった。三つ、明治政府の四民平等のための身分制度は、まだ根をおろしておらず、新平民になった穢多たちは社会的な蔑視と冷遇をうけざるを得なかった。彼らの心のなかにも韓国的な恨ができていたことが、島崎藤村の『破戒』を通じて確認できた。四つ、近代日本の労働者と農民などの庶民が困窮を極めていたことと彼ら明治日本の庶民からも、また韓国的な恨が発見できた。五つ、日清戦争、日露戦争、日刊併合など軍国主義にはしる過程で犠牲になった日本人とこのような動きを心配していた知識人からも韓国的な恨のイメージが発見できた。. ちなみに、近代日本文学作品のなかにあらわれている韓国的な恨のイメージを整理したことをもって、明治日本の社会の一つの断面を、新しい角度で見ることが出来た点に、今回の研究の意義があると考えられ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