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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桂苑筆耕集》은 한국과 중국 양국의 문헌의 기록이 많지 않아, 그 유전과정을 밝히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이른 기록으로 《新唐書》<藝文誌>에 “崔致遠《四六》一卷과 《桂苑筆耕》二十卷”란 문자가 있으며, 高麗 金富軾의 《三國史記》卷四六에 이에 근거한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東國書目》、《東國通鑑》과 《東史纂要》 등의 사적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南宋에서 淸 道光 사이 이 책의 세상에 전함이 매우 드물어, 《全唐詩》와 《全唐文》에 모두 수록되지 않았다. 따라서, 《四庫全書總目》과 《崇文總目》 등의 서목에도 누락되고 있다. 설령 이와 같더라도, 《桂苑筆耕集》은 그 문필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사료의 가치의 귀중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시 되어, 후대 여러 차례 인쇄되고 초록되어 세상에 전하게 된다. 본 논문은 《桂苑筆耕集》의 版本源流와 版本系統에 대한 대략적인 정리와 고증이다.



《桂苑筆耕集》二十卷是唐末新羅文人崔致遠自編的詩文別集,集中收彔了他宦遊淮南幕府時期的表狀書啓及詩文之作,文風淵雅贍麗,是韓國現存最古的漢文典籍之一,也是朝鮮三國時代唯一傳世的個人著作,因而被該國學者譽爲“東方文章之本始”和“東方藝苑之本始”。 此集翔實地記彔了唐末很多重要的歷史事件和人物,具有丰富而珍貴的文獻價値,陳寅恪曾盛贊:“崔致遠《桂苑筆耕》代高騈所作書牒,關于汴路區域徐州時溥泗州于濤之兵爭及運道阻塞之記載甚多,俱兩《唐書》及《通鑑》等所未詳,實爲最佳之史料。” 但此集長期以來在中韓兩國皆罕見流傳,最早著彔該集的是《新唐書》卷六○《藝文誌》:“崔致遠《四六》一卷、又《桂苑筆耕》二十卷。” 高麗金富軾《三國史記》卷四六崔氏本傳便據此記載,《東國書目》、《東國通鑑》及《東史纂要》等史籍則不見著彔。我國自南宋至淸道光間此集亦很少流傳,因而《全唐詩》與《全唐文》皆未收彔,《四庫全書總目》與《崇文總目》等書目亦闕載。盡管如此,《桂苑筆耕集》以其文筆之優美與史料之可貴而受到人們的重視,后世曾屢次鋟印傳抄,使之得以流傳幷擴大影響。本文擬對此集的版本源流與版本系統略作梳理和攷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