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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6세기 필기에서 기록문학에서의 서사적 위상을 고려해 보았다. 그 대상자료는 기묘록과 용천담적기이다. 기묘록은 전대 역옹패설과 필원잡기와 같이 사필을 잡은 이의 기록의식으로 공경대부의 언행을 다룬 점에서 그 전통을 이으며, 다른 한편 16세기의 기묘사화라는 특정현실을 담아내어 후세에 알리려는 정치적인 목적의식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글쓰기의 전통을 계승했으되 새로운 특징은 정치적 목적의식성으로 인한 인물의 언행이 이념화된 점이다. 기록서사로서의 특징적인 일면은 당대 사화의 피해자인 인물을 역사적 현실에서 이념화 한다. 그런데 견문기록을 모아 출처의 근거를 표지하며 기록하였기에 서사문학으로서 한계가 있었다. 기묘록은 당대인와 후대인들의 견문기록을 모아 놓은 것으로 전(傳)을 위한 전(前) 단계로서 자리매김 된다.한편 16세기에 이르러 사활(死活)을 건 정치적 사건의 견문기록이 속출되는데, 기묘사림이었던 김안로의 용천담적기에는 이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일반적인 사대부 필기로서 생활상(生活相)을 기록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미(寒微)한 신분의 사람이 겪은 기이(奇異)한 체험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기록 또한 용천담적기의 채생과 박생이 겪은 기이한 경험의 견문기록으로 서사문학으로 발전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傳聞한 김안로의 논평이 기록의 중심이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16세기의 필기의 서사문학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기록성은 전대(前代)의 필기문학보다는 서술의 폭을 확대하였고, 이후 야담의 발전에 한 줄기 서사문학으로의 물꼬를 터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채생과 박생이야기 뒤에 논평을 부기함으로써 사대부 이념에 의해 허구적 서사문학성을 배제하며, 이는 유가적인 현실주의에 입각한 事實의 경험기록만이 긍정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두 기록은 위에서 서술한바 내용의 차이가 있으나 그 차이 속에 동질성이 발견된다. 기묘록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사대부 이념에 의해 서사구조를 만들어 가는 단계이며, 용천담적기는 서술된 기이한 사건이 사대부 의식에 의해 현실적으로 조절된 점이다. 두 기록물은 16세기 필기로서 사실의 차원에서 사림의 유가적 합리주의를 내포한다. 역사적 현실에 피화(被禍)된 인물의 기록인 기묘록과 한미한 신분의 사람이 기이한 공간에서 체험기록인 용천담적기는 내용상 차이가 있지만 유가적 이념에 의한 현실세계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기록서사의 의미의 지향은 같다. 곧 두 작품을 통해 16세기 필기의 한 특징적 면모를 이끌어낸다면 기록저술자의 철저한 유가의 의식에 의한 현실세계만이 긍정된다는 것이다. 이념을 근간으로 한 역사적 현실의 실제 경험만이 긍정되므로 여기에는 허구적 서사가 뿌리내릴 수 없다. 그래서 16세기 필기의 내용은 김안로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정도(正道)를 걸어가며 고난을 만나더라도 참아 나가는 것’으로 실제의 역사현실에서 사대부(士大夫)의 길을 기록하려 한다. 그것은 16세기라는 정치적 현실과 역사적 주역인 사림(士林)의 등장에 의한 것이고 15세기와 17세기의 중간 거리에 있는 16세기의 필기문학적 특징으로 유가적 이념에 의한 현실의 기록서사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