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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갈래 변별에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형태상의 변별 요소와 형태 외적인 변별 요소를 잣대로 삼아 시조와 가사의 경계에서 갈래 논란을 빚어왔던 몇몇 시가 작품들을 살펴 거기에서 합당한 논리를 마련코자 했다.시조가 세 토막 안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절제된 양식의 갈래라면, ‘가사는 44조의 연속체’로 무한정 확대될 수 있는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사는 분절성이 있는 장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형태상의 변별 요소만으로는 갈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기 어려움을 雜歌 중의 ‘短歌’나 <橫殺門>과 시조(가곡)화된 <子規詞>를 통해 확인했다. 변별 요소들을 통한 검토 결과는 다음과 같다.연형식을 취하고 특유의 조흥구를 지닌 어부사류, <十二歌詞>, 우리말 부분은 吏讀式 표기로 되어 있는 李璋의 長歌, 杜谷이 중국 宋나라 사람 馬存의 <馬子才歌>를 번역한 <浩浩歌> 등은 시조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 시가 양식임을 논했다. 임금이 환궁할 때 성균관 學官이 여러 유생들을 거느리고 헌상한 歌謠란 것도 있었다. 이는 조선조에 시조나 가사의 경계 밖에도 다양한 양식의 시가가 있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盧母夫人答歌> <君子曲> <平天下曲> <天地一家曲> <심의산 …> <到對馬島歌> <和京都安仁壽歌> 등은 단형시조보다 늘어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異形의 작품이 창작되고 또 노래로 불렸을 가능성은 조선조 언제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바탕을 제공한 것은 민요라고 보았다. 姜復中의 작품이나 조선 말기 雲圃 李中麟의 작품이 늘어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논란을 빚었던 <玉溪操>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작품임은 분명 하다. 다른 九曲歌처럼 분절성이 있는 작품이 아니기에 가사로 본다거나 작자가 스스로 ‘右三章’이라고 한 것을 근거로 3장 형태의 시조로 보는 것 둘 다 수긍하기가 만만치 않다. 3장으로 된 시조 중에서 종장이 위와 같이 9구로 된 작품의 예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을 확대 지향의 갈래인 가사로 보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절제 지향의 시조 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는 생각이다. 우리 시가의 신축성과 다양성을 이 작품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