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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재현’의 관점에서 이청준 예술가소설의 다양한 서사적 특성을 검토하여 작가의 서사 전략을 밝혀 보았다. 논의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먼저 ‘추리’의 서사는 인물이나 사건을 재현할 수 없다는 재현 주체의 회의를 드러내주고 있다. 즉 이청준의 소설에서 곧잘 등장하는 추리의 서사는 사건이 먼저 존재함으로써 그러한 사건을 ‘재현’하려는 시도, 그러한 대상을 재현할 수 없음에도 재현해야 하는 부조리한 소설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결과 장인 계열에서의 ‘추리’의 서사는 장인의 예술 세계와 삶의 방식에 대해 ‘이화 효과’를 유발하는 전략으로, 소설가 계열의 추리의 서사는 작품의 완결된 의미해석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로써 근대 추리소설과 이청준 소설에서 활용되는 ‘추리’ 서사의 차이점이 확연하게 드러났다.또 대립되면서도 서로 닮아 있는 ‘짝패(double)’ 관계의 등장인물들이 이청준의 소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분신(分身) 관계에 있는 인물들은 소설가 계열에서 사건을 직접 체험하는 주체와 그런 ‘체험적 주체’를 다시 해석하는 ‘해석적 주체(반성적 주체)’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주체를 이중화하는 전략을 통해서 재현 주체의 회의를 보다 잘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소설가 계열에서 ‘소설’이 매개가 되어 재현 주체의 반성적인 인식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작가의 서사 전략과 ‘재현’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를 해명했다. 이청준 소설의 변모 양상은 이러한 내용 속에서 충분히 예시되고 있었다. 즉 이청준 소설의 다양한 형식적 특성과 구성 방식은 이처럼 소설적 재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 소설의 재현 형식을 회의하는 과정 속에서 거꾸로 다양한 서사 전략이 추구된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이나 알레고리를 통해 관념화하는 소설적 경향이나 파편적인 일화로 사건을 재구성해가는 에피소드 형식의 소설, 작가의 실제 체험에 허구적인 요소를 혼합한 자전적인 소설, 메타픽션적 구조를 띤 소설들 또한 모두 ‘재현’의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소설 형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여러 소설들에서 반복변주되어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 모티프들 또한 그런 관점에서 주목될 부분이다. 특히 비교적 후기 소설에 해당하는 <날개의 집>이나 ≪무소작≫의 경우엔 근대 소설 형식이 아닌 ‘예인전(藝人傳)’과 유사한 소설 형식을 보이는데 이러한 소설적 특성은 ‘재현’에 관한 문제를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상에서 검토한 대로 이청준의 예술가소설은 ‘예술가’라는 존재와 그들의 고뇌, 즉 ‘재현’의 문제의식을 소설의 주제의식으로 삼아 다양한 서사 전략과 소설 형식의 변모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