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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정재 박태보(1654-1689)의 삶과 행적을 중심으로 명재 윤증(1629-1714)과의 교연 관계를 살펴보려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정재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1629-1703)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서계의 셋째 형인 박세후(1627-1650)에게 입양됨으로써 명재를 외삼촌으로 모시게 된 인연 때문에 명재와는 대단히 가까운 인척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였던 인물이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정재의 삶과 명재의 교연 관계를 논의하였다. 첫째, 정재 박태보의 삶과 행적을 살펴보았다.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았던 정재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이 글은 주로 『정재집』과 『숙종실록』 및 『연려실기술』 등의 자료를 참조하였다. 이들 자료를 통해 정재의 성품이 본래부터 그 뜻이 고상하였음을 알았고, 견식이 투철하여 시비를 가리는 데 조리가 정연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리에는 과감히 나섰으며,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정재 박태보에 대한 명재의 애정과 연민에 대해 살펴보았다. 명재는 정재의 어린 시절부터 그를 매우 총애하다가 자신의 생질이 된 이후에는 그에 대한 애정이 이전보다 더 깊어졌다. 명재는 정재의 인품과 능력을 매우 아꼈고, 정재 역시 명재를 성심으로 모시며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 정재가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를 가던 도중 옥독을 이기지 못하고 죽자, 명재는 그 슬픔과 연민의 정을 드러낸 글들을 남긴다. 거기에는 정재의 죽음과 명재의 시국관이 중첩되어 표명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은 주로 『명재유고』와 『숙종실록』의 기사를 토대로 확인하였다. 셋째, 백호 윤휴(1617-1680)와 노서 윤선거(1610-1669)에 대한 입장 및 평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정재는 세간에서 말하는 백호와 노서, 그리고 백호와 명재의 관계가 동질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명재에게 알렸다. 이 문제는 특히 백호에 대한 의구심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에 명재는 세간의 평가가 잘못 되었을 뿐 아니라, 이는 자신과 선친인 노서를 백호의 당여로 보려는 불순한 저의로부터 나온 모함임을 애써 역설하였다. 명재는 백호에 대해, 그가 처음에 유학에 뜻을 두었을 때는 인정 할만 했으나, 후일 그가 『중용』에 대한 변개와 주자에 위배되는 주해로 인해 ‘이단’으로 몰렸을 때, 그리고 예송 문제로 정계에서 활동하던 때는 서로 간에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고 강변하였다.



本论文的目的在于以定斋朴泰辅(1654-1689)的生涯和行迹为中心考察他和明斋尹拯(1629-1714)的交緣关系。定斋朴泰辅是西溪朴世堂(1629-1703)的次子,被西溪的三哥朴世垕(1627-1650)收养,值此叫明斋为外舅,所以跟明斋有很深的亲情关系。本论文主要从以下三个方面阐述定斋的生涯和同明斋的交緣关系。 第一,考察了定斋朴泰辅的生涯和行迹。为了考察从小开始超凡的定斋的生涯,本论文主要参考了【定斋集】、【肃宗实录】、【练藜室记述】等资料。通过这些资料了解到了定斋的志气高尚的品性,确认了因透彻的见识是非条理分明,胆敢面对非理,为了义理不惜性命的个性。 第二,考察了明斋对定斋朴泰辅的情感和怜悯。明斋特别宠爱幼小的定斋,定斋成自己的外甥之后对他的情感比以前更加深厚。明斋爱惜定斋的人品和能力,定斋也真诚敬重明斋,遵从了明斋的教导。定斋因反对仁显王后的废位,被流放途中无法忍受狱毒而身亡,对此明斋写了表达自己的悲哀和怜悯之情的文章。此文章中交织着定斋之死和明斋的时局观。上述的内容主要通过【明斋遗稿】和【肃宗实录】为根据得到了确认。 第三,考察了对白湖尹鑴(1617-1680)和鲁西尹宣举(1610-1669)的立场和评价。定斋告知明斋说世间对白湖和鲁西、白湖和明斋关系的评价是同质的。此问题的焦点在于对白湖的疑惧心。对此明斋力说世间的评价不仅是错误的,而且又是把自己的父亲鲁西视作白湖与党的谋陷。明斋强辩说,白湖当初立志于儒学时可以认他,但是后来他因更改【中庸】、进行违背朱子的注解而视作异端时,还有对礼讼问题在政界活动时,定斋和自己有了明确的界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