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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근세 철학은 퓌론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퓌론주의에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필연적으로 ‘퓌론주의에 대한 관계 설정’을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흄의 회의주의는 이런 관계 설정의 불가피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간주될 수 있다. 흄의 회의주의의 총체적인 모습은 그의 ‘완화된 회의주의’에서 나타난다. 완화된 회의주의란 극단적인 퓌론주의자로서의 흄과 자연주의자로서의 흄의 인과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흄의 완화된 회의주의란 퓌론주의에 대한 이중의 전도이다. 먼저 실천적 영역에서 흄은 자기 자신을 자연에 의해 퓌론주의를 반박할 수 있는 반퓌론주의자로 여기지만, 이때 그는 정작 퓌론주의자이다. 고대의 퓌론주의자들이야말로 삶의 영위 불가피성을 자각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론적인 영역에서 흄은 자기 자신을 퓌론주의자로 여기지만, 등치의 방법을 상실하고 순수하게 직접적인 지각을 확실한 전제로 설정함으로써, 흄의 퓌론주의는 실상은 고대 퓌론주의자들이 겨냥하고 있는 독단주의에 속한다.물론 흄이 퓌론주의를 이중으로 전도시켰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부정적인 의의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퓌론주의와의 관계 설정’에서 흄의 중요한 철학적 공헌은 (역설적으로 보이겠지만) “왜 흄의 퓌론주의가 독단주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가?”를 각성하게 만든 점에 있다. 퓌론주의자들이 볼 때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의 포착에 대한 주장은 모든 철학적 지식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그들의 작업과 종국에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흄 회의주의가 독단주의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은 거꾸로 퓌론주의의 문제를 문제로서 드러날 수 있게 해 주는 동시에, ‘퓌론주의와의 관계 설정’이라는 맥락에서 방향 선회의 기점을 마련해 준다. 흄 회의주의의 퇴락을 통해서 칸트와 헤겔은 퓌론주의의 진정한 이론적 강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