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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가로 풀어쓰기는 한자와의 단절, 곧 한글 전용화를 꾀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으로 초기 국어학자들뿐 아니라 선교사, 매체 편집인 등 한글 사용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이는 한자와의 단절을 통해 완벽한 한글로만 된 문자 환경을 이룩하려 한 이상주의자들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로쓰기는 채택되었지만 풀어쓰기는 그렇지 못했다. 처음부터 가로쓰기와 함께 제시되었고 그에 따른 반감의 세기도 비슷했지만 유독 풀어쓰기가 내포한 이상(理想)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애초 음소문자로 창제된 한글이 음절 단위로 사용되어 온 이 오랜 전통을 불식시키고 음소화를 실현하려 한 풀어쓰기의 이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근대 초기 국어학자들 외에 다양한 매체 관련자들, 특히 ‘2인 문단시대’의 주역으로 꼽히는 최남선과 이광수 같은 문학자들에 의해서도 시도되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 있다. 이 연구는 근대 초기 문자 실험이 매체와 연동하고 있음에 착목하여 주시경, 최남선, 이광수가 1914년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다른 지면을 통해 한글 가로 풀어쓰기를 실험한 양상을 재구해 보았다. 이로써 각각의 한글 가로 풀어쓰기에 유의미한 차이점과 반복되는 공통의 예시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초창기 한글에 대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던, 다시 말해 한자로부터 분리된 한글 사용의 언어관을 공유하고 실제로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ハングルの分かち横書き(例:한글➝ㅎㅏㄴㄱㅡㄹ)は漢字との断絶、すなわちハングルのみを使用するハングル専用化を図る最善の戦略として近代初期の国語学者だけでなく、外国人宣教師、書籍編集者といったハングル使用者にとっても魅力あるものだった。それは漢字との断絶を通じ完璧にハングルだけによる文字環境を樹立しようとした理想主義者たちの産物でもある。しかしこの過程において横書きは採用されたが、分かち書きはそうはいかなかった。初めから横書きとともに試みられ、それにともなう反感の強さも似ていたが、特に分かち書きの抱える理想は現実との距離が大きいとの理由から説得力を持ち得なかった。最初音素文字として創られ、音節単位で使用されてきたハングルの長い伝統を払拭し、音素化を実現しようとした分かち書きの理想は失敗するしかなかったわけだ。ところでこの試みは近代初期の国語学者の外、メディア関連の多様な関係者、特に「二人文壇時代」の主役として挙げられる崔南善と李光洙といった文学者たちによっても試みられたという事実が見落とされていた。本研究は近代初期の文字の実験がメディアと連動していたことに注目し、周時経、崔南善、李光洙が一九一四年、同時多発的に異なる紙面を通してハングルの分かち横書きを試みた様相を再構成してみた。これによりそれぞれのハングル分かち横書きでの意味ある差異と、反復・共通する例示文を発見することができた。また何よりも彼らは創製期ハングルの共通認識であった漢字との結合から、漢字から分離されたハングル使用へという言語観を共有し、それを多様な方法で実験していたことが確認でき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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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メディア, ハングル, 横書き, 分かち書き, 一九一四年, 周時経, 崔南善, 李光洙, 『アイドゥルボーイ(아이들보이)』, 『大韓人正教報(대한인정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