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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화 연구에 있어서 ‘주관화’라는 개념은 문법화 과정에 수반되는 의미변화를 기술하는 용어로서, 또는 그 의미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제로서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이 ‘주관화’ 개념은 문법화를 겪는 어원어의 의미가 화자의 내적인 상황이나 주관적인 태도를 기술하는 의미로 변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문법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의미변화의 매우 강력한 경향성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 논문은 이 ‘주관화’와는 변화의 방향이 역방향인 ‘객관화’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러한 현상이 자주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사용하는 ‘객관화’라는 개념은 한 어원어가 문법화를 겪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주관적인 의미로부터 객관적인 의미로, 또는 덜 주관적인 의미로 변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와 같은 두 가지 역방향의 의미변화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한국어의 ‘같다’, ‘싶다’, ‘보다’의 세 어원어가 서법표지로 문법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이들 문법소들은 최종적인 문법화 산물이 서법표지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의미기능이 주관적인 개념의 표지이기 때문에 이들 세 가지 문법소의 변화과정은 모두 주관화로 볼 수 있는 분석 층위가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분석 층위에서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전략들이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같다’의 경우에는 명제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사물로 사상(mapping)시키는 객관화 과정이 있으며, ‘보다’의 경우에는 명제적인 내용을 가시성이 있는 대상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객관화 현상이 있으면서도 한편 명제적인 내용을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상태로 사상시키는 점에서 주관화 현상이 있다는 것과, 또한 ‘싶다’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원망(願望)을 표시하는 점에서 주관화 현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비록 ‘주관화’라는 개념이 문법화 현상에 수반되는 의미변화를 연구함에 있어서 기술적인 (descriptive) 용어나 설명적인 용어로서 매우 유용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문법화 현상에 있어서 의미변화는 매우 복잡한 것이며 따라서 주관화와 객관화 두 가지 현상 모두가 문법형태의 발전 과정에서 작용하는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양방향성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많을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