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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박제가는 18세기 후기 조선의 저명한 문학가이며 실학자이다. 뛰어난 재능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4차례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는적극적으로 수많은 청조문사들과 접촉하고 교류하였다. 그들의 문학, 학술적 교류는 선명한 특징을 갖고 있으며 당대 청조 학계는 물론 조선문단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박제가와 청조 문인들의 교류는 다음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박제가는 18세기 조선 문인들 가운데 청조 문인들과 교류한 시간이 가장 길고 교류 범위도 가장 넓은 지식인이다. 4차례의 연행을 통해 그가 교류한 청조학자(척독 또는 시문으로 교류한 청조문인 3명포함)는 모두 168명이다. 둘째, 박제가와 교류한 청조 문인 중에는 당시 청조 문단의 걸출한 학자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紀昀, 李鼎元, 李驥元, 祝德麟, 孫星衍, 錢東垣, 洪亮吉, 陸費墀, 邵晉涵 등등이다. 셋째, 박제가는 특별히 청조 학자들과 시가이론, 시가 창작 방면의 교류를 중시하였다. 박제가가 청조 문인들과 가장 많이 교류한 내용이 바로 시가이다. 박제가와 청조 문인의 唱和는 총 24회에 달하고 그들이 주고받은 贈詩는 237수(1800년 이후에 창작한 시를 포함)에 달한다. 박제가와 청조 문인의 교류는 당시는 물론 후세의 조선과 청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첫째, 박제가는 중국문학, 특히 청조 당대 시인 및 작품을 조선에 소개하였고 동시에 조선의 당대 시인 및 작품들을 중국에 전파하였다. 우선, 박제가는 “회인시” 형식으로 청조의 저명한 문사들을 조선문단에 소개하여 청에 대한 인식을 넓히도록 하였다. 다음, 박제가는 중국에 사행가기 전과 4차례의 사행을 통해 자신과 조선의 친구들의 작품 및 조선의 일부 문헌들을 청조에 소개하였다. 이는 조선 문인들의 명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청조 문인들이 조선 문인 및 문화에 대한 이해를 추진하였다. 둘째, 박제가와 청조 문인들이 구축한 학술인맥은 19세기 김정희와 청조문사들의 깊은 교류를 위해 길을 열어놓았다. 박제가나 김정희 모두 청조 학술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조선의 학술적 시야를 넓히고 학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크게 공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