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열기/닫기 버튼

이 논문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작가들의 희곡에 나타난 민족의식, 트라우마로서 내면화된 강제이주 체험, 언어와 풍습에 대한 기억과 재구성을 통한 민족 정체성 재정립의 양상 등을 살펴보았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직후부터 스탈린 집권까지 신한촌, 강제이주라, 또는 한민족과 관련된 일체의 언급이 원천 봉쇄당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환경 때문에 스탈린 통치 기간에는 스탈린을 영웅화하거나 소비에트 국가 정책을 찬양하는 정론적(政論的) 송가(頌歌) 양식의 작품만을 창작할 수밖에 없었다.중앙아시아 고려인 작가들은 기억을 통해 강제이주 이전의 역사를 소환하여 새로운 민족 서사를 구축하려 했다. 그런데 이들의 민족 서사에 대한 복원 욕망은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자발적으로 동일시하려 했던 시간과 사건을 망각할 때 가능했다. 특히 강제이주 체험은 고려인 작가에게 있어서 ‘기억/망각’의 복잡한 작용을 통해 문학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때 강제이주에 대한 기억은 자연스럽게 ‘연해주’라는 고향 체험을 함께 불러오게 된다. 고향의 체험은 이들에게 민족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강제이주 1세대 작가에게만 한정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이주 2, 3세대에 와서는 순수하고 투명한 민족의식은 사라지게 된다.고려인 작가들은 모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기억해 냄으로써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계승시키려 한다. 공용어가 소비에트어로 고착된 이후의 상황에서 과거의 언어를 불러들이는 것은 훼손되었던 민족 정체성을 원상태로 복원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다. 또한 이들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풍습과 전설을 다시 환기시킴으로써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이 상상하는 민족 정체성은 서로 다른 역사 체험, 시공간적 단절, 사회 구조, 정치 상황 등에 의해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과 매우 다를 수밖에 없는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역설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이들의 민족 정체성이야말로 민족, 국가, 인종의 정체성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복합적이며 다양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A Study of National Identity in the Literature of the Koreans in the Soviet Central Asia.- focusing on their play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