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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坤은 明末의 反道學的 성향을 대표하는 학자였지만, 여전히 朱熹와 陸象山 및 王陽明으로 대표되는 송명성리학의 수양론을 많은 부분 자신의 체계 속에 수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明末의 시대문제, 즉 부패한 정치와 썩어빠진 人情을 개선할 수 있는 주체는 그 원인을 제공한 당시 지주계급이자 관료였던 貴者와 賢者의 수양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송명성리학이 수양의 주체로 상정한 사람들도 사대부관료였기 때문에 수양의 주체설정이 동일했던 것이다. 둘째는 철학의 시대 제약성, 즉 당시에는 수양을 통한 자기 개선이 사대부 이상의 군자들에게만 허용되었지, 백성에게 까지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백성은 단지 교화의 대상일 뿐이었다. 셋째는 유용성인데, 여곤은 만약 그것이 백성의 삶에 유용한 것이라면 자신의 사상에 반하는 것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呂坤은 당시 관료들이 부패한 원인을 욕망의 문제로 풀면서, 分을 통한 욕망의 합리적 충족을 주장했다. 또한 수양주체들의 마음공부를 통해 心體의 회복을 주장했다. 왜냐하면 심체가 회복되면, 천하의 만사만물의 이치와 변화에 過不及이 없이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심체를 회복하기 위해 여곤이 제시하는 공부가 내면공부인 靜敬愼獨과 외면공부인 讀書이다.내면공부인 靜을 통한 수양을 하게 되면, 일체 사물을 모두 응수(應酬)할 수 있고 모두 정확히 처리할 수 있다. 또한 敬공부는 제멋대로 동요하거나 방종하지 않게 하며, 愼獨공부는 天德과 王道를 성취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독서를 통한 외면공부는 대상사물과 고금의 예법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이상을 통해 볼 때, 비록 여곤의 수양론이 내면수양, 그 중에서도 특히 靜수양에 강조점이 두어지기는 하지만 내외면공부의 균형을 지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朱子와 陸象山王陽明이라는 각 계열 각각의 편중된 工夫法을 반성하여 중용 본래의 공부체계인 尊德性과 道問學을 적절히 조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